
‘녹색 소비’에 얽힌 ‘불편한 진실’
에코의 함정 | 헤더 로저스 지음 | 추선영 옮김 | 이후 | 2011. 12 | 18,000원
장 성 익/ 저술가, 환경평론가
지구 온난화니 석유 고갈이니 하는 얘기를 들을 때면 당신은 살짝 이런 생각을 떠올릴 터이다. 음, 환경위기가 심각하긴 한 모양이군. 그러면서 주위를 쓱 둘러본다. 이른바 ‘친환경’ 제품이 차고 넘친다. 유기농 먹거리와 공정무역 제품을 비롯해 녹색 건축, 녹색 자동차, 녹색 패션, 녹색 투자 따위로 녹색 상품의 행렬은 끝없이 이어진다. 물론 가격이 좀 비싸기는 하다. 하지만 나름 교양 있고 양심적인 시민으로 살고자 하는 당신은 기꺼이 지갑을 연다. 그러고는 만족감이나 자부심 비슷한 걸 느낀다. 그래, 나도 지구를 살리는 일에 동참하고 있는 거야.
과연 그럴까? 이 책에 따르면 ‘아니요’다. 자신의 생활방식 자체를 희생할 마음은 없이 소비를 통해 손쉽고 편안하게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여기는 건 ‘게으른 환경주의’ 혹은 ‘안락의자 환경주의’다. 이런 생각은 허구적인 환상이자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쓰레기 문제를 심층 추적한 『사라진 내일』을 쓰기도 했던 지은이 헤더 로저스는 이 책에서 세계 곳곳의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녹색 탈을 쓴 소비 자본주의’에 얽힌 ‘불편한 진실’을 집요하게 해부하고 고발한다.
이를테면 유기농을 한번 들여다보자. 파라과이의 대규모 유기농 사탕수수 농장에서는 화학물질을 뿌리지는 않지만 유기농의 본령에 어긋나는 단일경작을 하고 있다. 유기농 작물 재배지를 확장하느라 숲을 파괴하기도 한다. 반면에 유기농 정신을 충실히 지키는 소규모 생산자들은 심각한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유기농 시장이 갈수록 커지면서 돈벌이만을 목적으로 하는 기존의 자본 논리에 유기농이 종속된 탓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바이오 연료도 다르지 않다. 옥수수, 콩, 사탕수수 등으로 만드는 바이오 연료는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한다는 이유로 친환경 대체 연료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세계 3대 열대우림 지역으로 꼽히는 보르네오 섬에서는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는 대규모 농장 개발로 인해 광대한 숲이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그 숲을 삶의 터전으로 삼던 수많은 원주민들은 자신의 땅에서 강제로 쫓겨나고 있다. 또한 식용 작물이 대거 자동차 연료로 전용되면서 세계적 식량난과 식료품 가격 폭등 사태를 일으키기도 한다. ‘친환경’이라고 포장되어 있지만 실은 자연과 공동체와 민중의 삶을 결딴내고 있는 것이 바이오 연료의 참 모습인 것이다.
지은이는 이런 녹색 자본주의는 대부분 기업과 정치인들이 선전하는 가정들을 내세우고 있다고 날카롭게 비판한다. 녹색 제품은 환경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소비자들을 자극해 물건을 더 많이 팔아보려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이윤 창출 술책의 산물인지도 모른다는 지적 또한 정곡을 찌르는 바가 있다. 요컨대 자본주의 아래에서 수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개별 소비자로서의 행동으로는 진정한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치구조와 경제구조의 근본적인 변혁이다. 지은이는 이를 위해 성장의 개념 자체를 기존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대중의 손으로 만들어가는 새로운 정치라고 주장한다. 책에서도 소상히 소개했거니와, 프라이부르크 생태마을의 성공 비결도 주민의 능동적 참여와 자치를 골간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힘이었다. 삶의 전환과 단호한 정치적 실천만이 참된 ‘녹색’을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얘기가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진실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책은 자신을 그런대로 괜찮은 ‘녹색 시민’이라고 안이하게 자족하거나 허술하게 착각해온 우리의 타성적 사고에 끼얹는 통렬한 한 바가지 찬물이다. 시원하다.
‘녹색 소비’에 얽힌 ‘불편한 진실’
에코의 함정 | 헤더 로저스 지음 | 추선영 옮김 | 이후 | 2011. 12 | 18,000원
장 성 익/ 저술가, 환경평론가
지구 온난화니 석유 고갈이니 하는 얘기를 들을 때면 당신은 살짝 이런 생각을 떠올릴 터이다. 음, 환경위기가 심각하긴 한 모양이군. 그러면서 주위를 쓱 둘러본다. 이른바 ‘친환경’ 제품이 차고 넘친다. 유기농 먹거리와 공정무역 제품을 비롯해 녹색 건축, 녹색 자동차, 녹색 패션, 녹색 투자 따위로 녹색 상품의 행렬은 끝없이 이어진다. 물론 가격이 좀 비싸기는 하다. 하지만 나름 교양 있고 양심적인 시민으로 살고자 하는 당신은 기꺼이 지갑을 연다. 그러고는 만족감이나 자부심 비슷한 걸 느낀다. 그래, 나도 지구를 살리는 일에 동참하고 있는 거야.
과연 그럴까? 이 책에 따르면 ‘아니요’다. 자신의 생활방식 자체를 희생할 마음은 없이 소비를 통해 손쉽고 편안하게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여기는 건 ‘게으른 환경주의’ 혹은 ‘안락의자 환경주의’다. 이런 생각은 허구적인 환상이자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쓰레기 문제를 심층 추적한 『사라진 내일』을 쓰기도 했던 지은이 헤더 로저스는 이 책에서 세계 곳곳의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녹색 탈을 쓴 소비 자본주의’에 얽힌 ‘불편한 진실’을 집요하게 해부하고 고발한다.
이를테면 유기농을 한번 들여다보자. 파라과이의 대규모 유기농 사탕수수 농장에서는 화학물질을 뿌리지는 않지만 유기농의 본령에 어긋나는 단일경작을 하고 있다. 유기농 작물 재배지를 확장하느라 숲을 파괴하기도 한다. 반면에 유기농 정신을 충실히 지키는 소규모 생산자들은 심각한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유기농 시장이 갈수록 커지면서 돈벌이만을 목적으로 하는 기존의 자본 논리에 유기농이 종속된 탓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바이오 연료도 다르지 않다. 옥수수, 콩, 사탕수수 등으로 만드는 바이오 연료는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한다는 이유로 친환경 대체 연료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세계 3대 열대우림 지역으로 꼽히는 보르네오 섬에서는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는 대규모 농장 개발로 인해 광대한 숲이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그 숲을 삶의 터전으로 삼던 수많은 원주민들은 자신의 땅에서 강제로 쫓겨나고 있다. 또한 식용 작물이 대거 자동차 연료로 전용되면서 세계적 식량난과 식료품 가격 폭등 사태를 일으키기도 한다. ‘친환경’이라고 포장되어 있지만 실은 자연과 공동체와 민중의 삶을 결딴내고 있는 것이 바이오 연료의 참 모습인 것이다.
지은이는 이런 녹색 자본주의는 대부분 기업과 정치인들이 선전하는 가정들을 내세우고 있다고 날카롭게 비판한다. 녹색 제품은 환경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소비자들을 자극해 물건을 더 많이 팔아보려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이윤 창출 술책의 산물인지도 모른다는 지적 또한 정곡을 찌르는 바가 있다. 요컨대 자본주의 아래에서 수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개별 소비자로서의 행동으로는 진정한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치구조와 경제구조의 근본적인 변혁이다. 지은이는 이를 위해 성장의 개념 자체를 기존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대중의 손으로 만들어가는 새로운 정치라고 주장한다. 책에서도 소상히 소개했거니와, 프라이부르크 생태마을의 성공 비결도 주민의 능동적 참여와 자치를 골간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힘이었다. 삶의 전환과 단호한 정치적 실천만이 참된 ‘녹색’을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얘기가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진실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책은 자신을 그런대로 괜찮은 ‘녹색 시민’이라고 안이하게 자족하거나 허술하게 착각해온 우리의 타성적 사고에 끼얹는 통렬한 한 바가지 찬물이다.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