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함께 일하는 언니가 나에게 물었다.
"혹시 「채식주의자」 알아요?"
"네? 채식주의자? 우리랑 활동하는 OOO활동가도 채식주의자잖아요?"
"아니~~ 사람 말고 요즘 없어서 못 판다는 한강 작가의 책이요"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최근에 나온 책인 줄 알았는데 2007년에 나온 연식이 좀 있었다.
그 책을 읽어본 소감을 짧게 나누고 싶다.
처음에는 채식주의자에 관한 이야기인가..싶었는데 딱히 채식에 중점을 둔 이야기는 아니었다.
주인공 영혜, 이 사람은 전통적인 아내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는 밖에서 일하는 남편이 사회생활을 잘 영위해 갈 수 있도록 하는 도구적 역할로 그려진다. 어느 날 그녀는 냉장고에 있던 생선을 포함 모든 고기를 내다 버렸다. 브래지어를 잘 착용하지 않는 것만 빼고는 정말 평범한(?) 아내의 변화에 남편은 이리 저리 머리를 굴려 그녀가 예전으로 돌아가 주길 바란다. 곧잘 맛있게 올려주던 고기반찬을 기대하며.
한 번은 회사에서 좋은 기회를 얻어 상사들과 그 부인들에 모임에 초대를 받아 영혜와 함께 식사 자리에 함께 하게 되고, 그 곳에서의 아내가 채식한다는 사실만으로 주변을 불편하게 만든다(채식하는 사람이 먹을 것이 없어서 거의 먹지 못한다면 주변에서 불편한 마음을 지니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일지도 모른다). 채식주의자들이 왜 고기를 먹지 않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윗 분들의 사모님들은 심기가 불편했지만 자신의 교양을 나타내기 위해 어떤 이유로 채식을 하는지 물었고 아내는 뜬금없이 자신의 꿈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물론 그녀는 그 사람들에게 구지 그런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하고 싶지도 않았겠지만 영혜는 그 자리에서 이상한 사람 취급 받게 되고, 이에 그 남편은 자신의 회사 사람들에게 자신마저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질까 노심초사한다. 그러다가 최후의 수단으로 처가 사람들에게 아내가 채식을 한다는 소식을 전하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아내를 바꾸어 보려고 시도한다. 가족 모임에서 한 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평상시에 영혜에게만 엄했던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고기를 억지로 먹이려다 뜻대로 되지 않자 그녀를 때린 것이다. 상황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위협 받는다고 생각한 영혜는 자해를 하고 만다. 그렇게 그녀는 채식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이상한 사람' 혹은 '미친 사람'이 되어 버렸다.
나도 한 때 채식주의자가 되겠다는 생각해 해 본 적이 있다. 환경적인 이유와 현재의 공장식 축산업에 대한 반감, 그리고 결국 이러한 시스템이 나의 몸을 해칠 거라는 판단 등이 있었다. 현재 나와 함께 일하는 한 사람도 채식주의자다.
그런데 이따금 나조차 불편해 지는 질문을 받고 있는 채식주의자 활동가를 보게 된다.
"고기를 안 먹으면 영양소는 어떻게 골고루 섭취해?"
"힘든 운동을 한다."
(장난끼 섞인 어투로) "나중엔 실수로 고기를 먹게 만들어야지"
물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악의가 있지 않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그 활동가가 불편할지는 확인해 보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와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잘 받아 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흔히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라고 하지만 다른 선택, 성향, 행동을 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말을 내 뱉고 있는가?
채식주의자였던 영혜가 고기를 먹지 않은 것이 왜 불편한가? 물론 고기를 섭취하지 않아서 건강이 나빠질까 우려한 것이 먼저 일테고 자신들의 사위나 제부에게 고기 반찬을 해 주지 않는 자신의 딸, 동생이 민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왜 채식이 문제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그것을 영혜의 그 변화를 수용하고 인정했다면 누구도 마음이 불편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영혜의 언니는 이야기 후반부에서 만약 자신이 고기를 먹지 않으려 단호한 태도를 보이던 영혜를 때린 아버지를 극구 말렸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부분에서 한 번의 행동과 마음가짐으로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영혜는 가족에 의해 두 번 정신병원에 머무르게 된다. 정상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이다. 물론 사람들 앞에서 너무 덥다고 옷을 훌렁 벗어 버리는 행동은 누구라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저 미쳤다고 할 수 있겠는가? 여튼 영혜는 자신이 더 이상 아무것도 먹지 않는 나무가 되어 간다고 생각한다. 통 먹지 않아 기아 상태에 이른 영혜에게 병원에서는 어떻게든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무던 애를 쓴다. 이마저도 거부하지만.
언니의 "너 그러다 죽어"라는 말에 영혜는 "왜, 죽으면 안되는 거야?" 되묻는다.
인간은 끝없이 먹는 것을 탐하고 성적이 욕구를 해소하고 싶어하고 살고 싶어한다.
그런 측면에서 영혜는 마치 인간의 본성을 저 버린 듯 하다.
책 소개를 보니 한강 작가의 다른 책하고도 연결성이 있는 책이 바로 채식주의자라는데, 한강 작가의 의도를 잘 파악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 스스로 느낀 것 하나는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상' 범주에 들어가 있지 않는 '비정상'을 못 참아 한다는 점이다. 시간이 날 때 읽어 보면 눈을 떼지 못하고 내리 읽어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오리 무리에서 태어났지만 다르다는 외모로 다른 오리들과 어울리지 못하다가 나중에 되어서야 자신이 백조였다는 것을 알았다는 동화 미운오리새끼, 그 존재가 오리건 백조건 상관 없지 않나. 우리는 어짜피 다 다르니까.
어느 날, 함께 일하는 언니가 나에게 물었다.
"혹시 「채식주의자」 알아요?"
"네? 채식주의자? 우리랑 활동하는 OOO활동가도 채식주의자잖아요?"
"아니~~ 사람 말고 요즘 없어서 못 판다는 한강 작가의 책이요"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최근에 나온 책인 줄 알았는데 2007년에 나온 연식이 좀 있었다.
그 책을 읽어본 소감을 짧게 나누고 싶다.
처음에는 채식주의자에 관한 이야기인가..싶었는데 딱히 채식에 중점을 둔 이야기는 아니었다.
주인공 영혜, 이 사람은 전통적인 아내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는 밖에서 일하는 남편이 사회생활을 잘 영위해 갈 수 있도록 하는 도구적 역할로 그려진다. 어느 날 그녀는 냉장고에 있던 생선을 포함 모든 고기를 내다 버렸다. 브래지어를 잘 착용하지 않는 것만 빼고는 정말 평범한(?) 아내의 변화에 남편은 이리 저리 머리를 굴려 그녀가 예전으로 돌아가 주길 바란다. 곧잘 맛있게 올려주던 고기반찬을 기대하며.
한 번은 회사에서 좋은 기회를 얻어 상사들과 그 부인들에 모임에 초대를 받아 영혜와 함께 식사 자리에 함께 하게 되고, 그 곳에서의 아내가 채식한다는 사실만으로 주변을 불편하게 만든다(채식하는 사람이 먹을 것이 없어서 거의 먹지 못한다면 주변에서 불편한 마음을 지니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일지도 모른다). 채식주의자들이 왜 고기를 먹지 않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윗 분들의 사모님들은 심기가 불편했지만 자신의 교양을 나타내기 위해 어떤 이유로 채식을 하는지 물었고 아내는 뜬금없이 자신의 꿈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물론 그녀는 그 사람들에게 구지 그런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하고 싶지도 않았겠지만 영혜는 그 자리에서 이상한 사람 취급 받게 되고, 이에 그 남편은 자신의 회사 사람들에게 자신마저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질까 노심초사한다. 그러다가 최후의 수단으로 처가 사람들에게 아내가 채식을 한다는 소식을 전하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아내를 바꾸어 보려고 시도한다. 가족 모임에서 한 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평상시에 영혜에게만 엄했던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고기를 억지로 먹이려다 뜻대로 되지 않자 그녀를 때린 것이다. 상황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위협 받는다고 생각한 영혜는 자해를 하고 만다. 그렇게 그녀는 채식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이상한 사람' 혹은 '미친 사람'이 되어 버렸다.
나도 한 때 채식주의자가 되겠다는 생각해 해 본 적이 있다. 환경적인 이유와 현재의 공장식 축산업에 대한 반감, 그리고 결국 이러한 시스템이 나의 몸을 해칠 거라는 판단 등이 있었다. 현재 나와 함께 일하는 한 사람도 채식주의자다.
그런데 이따금 나조차 불편해 지는 질문을 받고 있는 채식주의자 활동가를 보게 된다.
"고기를 안 먹으면 영양소는 어떻게 골고루 섭취해?"
"힘든 운동을 한다."
(장난끼 섞인 어투로) "나중엔 실수로 고기를 먹게 만들어야지"
물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악의가 있지 않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그 활동가가 불편할지는 확인해 보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와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잘 받아 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흔히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라고 하지만 다른 선택, 성향, 행동을 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말을 내 뱉고 있는가?
채식주의자였던 영혜가 고기를 먹지 않은 것이 왜 불편한가? 물론 고기를 섭취하지 않아서 건강이 나빠질까 우려한 것이 먼저 일테고 자신들의 사위나 제부에게 고기 반찬을 해 주지 않는 자신의 딸, 동생이 민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왜 채식이 문제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그것을 영혜의 그 변화를 수용하고 인정했다면 누구도 마음이 불편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영혜의 언니는 이야기 후반부에서 만약 자신이 고기를 먹지 않으려 단호한 태도를 보이던 영혜를 때린 아버지를 극구 말렸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부분에서 한 번의 행동과 마음가짐으로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영혜는 가족에 의해 두 번 정신병원에 머무르게 된다. 정상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이다. 물론 사람들 앞에서 너무 덥다고 옷을 훌렁 벗어 버리는 행동은 누구라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저 미쳤다고 할 수 있겠는가? 여튼 영혜는 자신이 더 이상 아무것도 먹지 않는 나무가 되어 간다고 생각한다. 통 먹지 않아 기아 상태에 이른 영혜에게 병원에서는 어떻게든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무던 애를 쓴다. 이마저도 거부하지만.
언니의 "너 그러다 죽어"라는 말에 영혜는 "왜, 죽으면 안되는 거야?" 되묻는다.
인간은 끝없이 먹는 것을 탐하고 성적이 욕구를 해소하고 싶어하고 살고 싶어한다.
그런 측면에서 영혜는 마치 인간의 본성을 저 버린 듯 하다.
책 소개를 보니 한강 작가의 다른 책하고도 연결성이 있는 책이 바로 채식주의자라는데, 한강 작가의 의도를 잘 파악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 스스로 느낀 것 하나는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상' 범주에 들어가 있지 않는 '비정상'을 못 참아 한다는 점이다. 시간이 날 때 읽어 보면 눈을 떼지 못하고 내리 읽어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오리 무리에서 태어났지만 다르다는 외모로 다른 오리들과 어울리지 못하다가 나중에 되어서야 자신이 백조였다는 것을 알았다는 동화 미운오리새끼, 그 존재가 오리건 백조건 상관 없지 않나. 우리는 어짜피 다 다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