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_ 인권, 생태 유린의 현장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이곳은.
재야의 청빈한 남산골 샌님들이 살 던 공간에서
일제의 행정타운으로, 미군의 군사기지로, 그리고 반공의 메카로...
그 변화의 시간 속에서 남산의 생태는 파괴되고 인권은 유린되었다.
이제 이곳은 다시 관광의 이름으로 그 아픈 기억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덮으려고 한다.
이렇게... 잊어도 될까?

1910년 이완용이 데라우치 통감과 강제병합을 조인한 경술국치의 현장.
통감이 머물던 관저에서 최소한의 인준요건마저 갖추지 못한채 이루어진 이 조약을 두고 데라우치는 그날밤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합병문제는 여차히 용이하게 조인을 완료했다. 가가(呵呵)'. 가가는 오늘날로 비유하면 'ㅋㅋ'에 해당된다.

일본은 남산의 한 가운데를 가르마 타듯 파헤쳐 조선신사(이후 조선신궁) 를 세우고 황국신민화 정책에 박차를 가했다.
참배객들이 신궁으로 오르기 쉽게 나무를 베어내고 돌계단을 깔았는데, 이것이 지금의 남산 돌계단(일명 삼순이계단)이다.
이 와중에 남산 정상 팔각정 자리에 있던 국사당(조선의 호국사당)은 신사의 머리 위에 둘 수 없다며 인왕산으로 옮겨 버렸다.

장충단은 을미사변 때 민비를 지키다가 숨진 군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이었는데,
한일병합 이후 폐지하고 벚나무를 심어 공원으로 만들었다.
마치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어 유린했듯이..
사진은 장충단 공원에 있는 수표교로 1960년대 청계천 복개시 이 곳으로 옮겨진 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해방 후 남산에는 전쟁과 분단의 흔적이 새겨졌다.
피난민들이 몰려들어 남산 서쪽 산등서이에 해방촌이라는 슬럼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남산 정상에는 25미터 높이의 거대한 이승만 대통령 동상이 세워졌지만 4.19혁명으로 사라졌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미국의 지지를 받기 위해 남산에 자유센터를 건립해 아시아 반공의 성지로 만드려고 했다.
최근 한국자유총연맹에서는 자유센터 내에 이승만 동상을 다시 세웠다.

일본이 물러간 후 남산은 반공의 메카가 되었다.
남산 북쪽 사면에는 옛 중앙정보부시설(안기부) 시설들이 생겨나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민청학련 사건', '구미 유학생 사건', ‘임수경ㆍ문규현 방북사건’ 등이 조작되고 협박, 고문 등 수없이 많은 인권 침해가 자행됐다.
군부독재에 항거하던 학생, 민주 인사,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날마다 끌려와 고문 속에서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현재는 서울유스호스텔, 문학의집, 서울종합방재센터, 서울시청남산별관 등으로 사용되면서 독재의 기억을 인멸시키고 있다.
유스호스텔에 묵는 사람들은 알까, 자신들이 머무는 곳이 수많은 사람들이 고문으로 고통받고 죽어가던 곳이라는 것을...
남산은 개체 수로 따지면 서울에서 벚나무가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다.
남산도서관에서 서울 타워에 이르는 벚꽃 터널은 100년 전 일제에 의해 조성됐는데,
벚나무들이 야금야금 퍼져 남산을 뒤덮으면서 남산의 상징이자 터줏대감인 굽은 소나무는 절반 이상 사라졌다.
1968년 무장공비의 청와대 습격 사건인 1.21 사태가 터진 뒤 유사시에 방공호로 쓰이기 위한 남산 1호 터널과 2호 터널이 건설됐다. 이 터널들은 강남과 강북을 잇는 교통로가 아니라 북한 공습 대비가 주목적이었다. 이른바 서울요새화 계획의 희생양이 된 셈 이다. 북한에서 보내는 전파를 차단하기 위한 송수신탑이 세워졌는데 그게 서울타워다.
남산 풍광을 해친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서울의 랜드마크가 됐다. 어린이 회관과 자유센터, 타워호텔, 외인아파트 (외국인을 위한 임대아파트), 하얏트 호텔 등이 마구 들어서면서 남산의 경관과 생태계가 크게 파괴됐다.

남산의 수난은 이게 끝이 아니다.
최근 남산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일 평균 220대의 관광버스가 남산을 출입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이 버스의 대부분이 경유차로 서울의 허파라고 할 수 있는 남산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서울시는 남산에 곤돌라를 설치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 곤돌라가 설치될 경우 역시 남산의 훼손은 피할 수 없다.

남산의 근현대사는 지워지고 있다. 생태의 이름으로 공원과 관광의 이름으로 그 간의 역사를 덮고자 하지만,
누군가는 다 사라진 공간에 녹슨 푯말이라도 새워 그 곳을 기억하려고 한다.
그리고 나는 그곳을 걷고, 그곳을 기억하는 또 한 사람이 되었다.
남산 _ 인권, 생태 유린의 현장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이곳은.
재야의 청빈한 남산골 샌님들이 살 던 공간에서
일제의 행정타운으로, 미군의 군사기지로, 그리고 반공의 메카로...
그 변화의 시간 속에서 남산의 생태는 파괴되고 인권은 유린되었다.
이제 이곳은 다시 관광의 이름으로 그 아픈 기억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덮으려고 한다.
이렇게... 잊어도 될까?
1910년 이완용이 데라우치 통감과 강제병합을 조인한 경술국치의 현장.
통감이 머물던 관저에서 최소한의 인준요건마저 갖추지 못한채 이루어진 이 조약을 두고 데라우치는 그날밤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합병문제는 여차히 용이하게 조인을 완료했다. 가가(呵呵)'. 가가는 오늘날로 비유하면 'ㅋㅋ'에 해당된다.
일본은 남산의 한 가운데를 가르마 타듯 파헤쳐 조선신사(이후 조선신궁) 를 세우고 황국신민화 정책에 박차를 가했다.
참배객들이 신궁으로 오르기 쉽게 나무를 베어내고 돌계단을 깔았는데, 이것이 지금의 남산 돌계단(일명 삼순이계단)이다.
이 와중에 남산 정상 팔각정 자리에 있던 국사당(조선의 호국사당)은 신사의 머리 위에 둘 수 없다며 인왕산으로 옮겨 버렸다.
장충단은 을미사변 때 민비를 지키다가 숨진 군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이었는데,
한일병합 이후 폐지하고 벚나무를 심어 공원으로 만들었다.
마치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어 유린했듯이..
사진은 장충단 공원에 있는 수표교로 1960년대 청계천 복개시 이 곳으로 옮겨진 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해방 후 남산에는 전쟁과 분단의 흔적이 새겨졌다.
피난민들이 몰려들어 남산 서쪽 산등서이에 해방촌이라는 슬럼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남산 정상에는 25미터 높이의 거대한 이승만 대통령 동상이 세워졌지만 4.19혁명으로 사라졌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미국의 지지를 받기 위해 남산에 자유센터를 건립해 아시아 반공의 성지로 만드려고 했다.
최근 한국자유총연맹에서는 자유센터 내에 이승만 동상을 다시 세웠다.
일본이 물러간 후 남산은 반공의 메카가 되었다.
남산 북쪽 사면에는 옛 중앙정보부시설(안기부) 시설들이 생겨나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민청학련 사건', '구미 유학생 사건', ‘임수경ㆍ문규현 방북사건’ 등이 조작되고 협박, 고문 등 수없이 많은 인권 침해가 자행됐다.
군부독재에 항거하던 학생, 민주 인사,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날마다 끌려와 고문 속에서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현재는 서울유스호스텔, 문학의집, 서울종합방재센터, 서울시청남산별관 등으로 사용되면서 독재의 기억을 인멸시키고 있다.
유스호스텔에 묵는 사람들은 알까, 자신들이 머무는 곳이 수많은 사람들이 고문으로 고통받고 죽어가던 곳이라는 것을...
남산도서관에서 서울 타워에 이르는 벚꽃 터널은 100년 전 일제에 의해 조성됐는데,
벚나무들이 야금야금 퍼져 남산을 뒤덮으면서 남산의 상징이자 터줏대감인 굽은 소나무는 절반 이상 사라졌다.
1968년 무장공비의 청와대 습격 사건인 1.21 사태가 터진 뒤 유사시에 방공호로 쓰이기 위한 남산 1호 터널과 2호 터널이 건설됐다. 이 터널들은 강남과 강북을 잇는 교통로가 아니라 북한 공습 대비가 주목적이었다. 이른바 서울요새화 계획의 희생양이 된 셈 이다. 북한에서 보내는 전파를 차단하기 위한 송수신탑이 세워졌는데 그게 서울타워다.
남산 풍광을 해친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서울의 랜드마크가 됐다. 어린이 회관과 자유센터, 타워호텔, 외인아파트 (외국인을 위한 임대아파트), 하얏트 호텔 등이 마구 들어서면서 남산의 경관과 생태계가 크게 파괴됐다.
남산의 수난은 이게 끝이 아니다.
최근 남산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일 평균 220대의 관광버스가 남산을 출입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이 버스의 대부분이 경유차로 서울의 허파라고 할 수 있는 남산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서울시는 남산에 곤돌라를 설치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 곤돌라가 설치될 경우 역시 남산의 훼손은 피할 수 없다.
남산의 근현대사는 지워지고 있다. 생태의 이름으로 공원과 관광의 이름으로 그 간의 역사를 덮고자 하지만,
누군가는 다 사라진 공간에 녹슨 푯말이라도 새워 그 곳을 기억하려고 한다.
그리고 나는 그곳을 걷고, 그곳을 기억하는 또 한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