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난지 5주기가 되는 날이죠.
그래서 이 사고와 관련한 저의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2011년에 일어난 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1주기를 맞이하여 센다이와 후쿠시마, 도쿄 지방엘 갔었습니다. 예전에 일하던 곳에서는 일본 청년, 재일교포 청년, 그리고 한국 청년들의 연대체가 있었고 해마다 공동연수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때마침 핵발전소 사고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깡그리 날려보낸 대지진을 계기로 그. 곳에 가 보기로 했지요.
당연히 처음에는 괜찮은거냐, 이것이 올바른 결정이냐에 대한 논의가 격렬하게 있었지만 어찌됐든 가게 되었어요.
센다이 지역 활동은 접고,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에 집중해서 이야기할게요.

우리가 갔던 지역은 도호쿠 - 후쿠시마현(福島県)에 위치한 아이즈 와카마쓰 지역이었습니다. 사카에이마치교회의 어린이집에서 핵발전소 피해에 대한 정신적 치유와 확산방지 노력, 그리고 한국의 상황도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한국 청년들은 한국의 미디어가 어떻게 후쿠시마 사고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공유하였습니다.

그리고 청년들이 핵없는 세상을 위해 어떤 활동들을 하는지도 사진으로 공유했지요.

이 사진은 일본에서의 시민들이 어떤 활동들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일본의 상황을 들을 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고 상상하지 못했던 부분, 삶의 터전을 버려야 하는 점은 저에게도 아픔으로 다가왔습니다.

역시나 일본의 상황을 들으면서 우리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질 수 밖에 없었고, 세상에...를 연발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전체 모임을 한 후 조별로 느낌을 나누었는데, 통역 시간이 들어가니 소요시간이 두 배 이상 들었지만 서로의 다양한 경험과 생각, 느낌을 공유하는 시간은 어떤 지식으로도 채울 수 없는 그 무언가였습니다.

공부와 공유의 시간이 끝나고 교회에서 준비해 준 음식으로 공동식사를 했습니다.

사실, 센다이에서도 그렇고 이 곳에서도 식재료 원산지가 아주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왜냐하면 공기 중으로 피폭되는 것보다 음식으로 체내에 흡수되는 피폭이 가장 무서운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인데요, 먹거리조차도 믿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면서 식사해야 한다는 점이 또 다시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그 두려움도 맹위를 떨치지 못하긴 했지만요 ㅋ

버스 안 인데요, 센다이에서 와카마쓰로 이동하는 내내 버스 안에는 방사능 측정기가 한 쪽에 자리하고 있었어요. 4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어느 거리를 버스가 내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방사능 피폭량이 올라갔고 우리는 미리 준비한 마스크를 착용했습니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눈길로 버스 밖을 보고 있는데 사람들은 피폭량을 아는지 모르는지 길을 걷고 있는데 무척이나 공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곳은 후쿠시마현에 있는 초, 중급 조선학교 운동장인데요,
방학이라서 아이들이 없는 것도 있었지만 문제는 이 운동장에 피폭량이 상당해서 아이들은 더 이상 이 운동장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참으로 아픈 사연들이 즐비했습니다.

운동장 한 켠에는 피폭량을 측량하는 기계가 서 있는 풍경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습니다.

학교 안에서의 후쿠시마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후, 단체 사진을 찍었는데요, 여기가 바로 운동장과 연결되어 있는 학교 건물 정문인데 조금만 더 나아가도 위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참 이게 뭔가.. 싶었습니다.

어린이집과 가까운 곳을 돌아보기 위해 일본어가 가능한 목사님과 길을 나섰고 그 끝에는 미니 붕어빵 같은 것을 파는 집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너무 귀엽고 맛있을 것 같아 우리도 모르게 가게문을 열고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우연찮게 주인과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더 가슴 아픈 이야기가 우리를 기다릴 줄 몰랐습니다.
낯선 사람들에게 마음을 잘 열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는 일본인이었지만 후쿠시마 핵발전소 시설에서 아직도 나오지 못하고 일을 하고 있는 아들과 암 투병을 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털어놓으셨습니다. 그 아주머니께서는 아프고 힘들지만 사람들 앞에서 그 두려움이나 슬픔을 드러내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면서 많이 우셨어요. 그 아픔을 나는 감히 다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냥 눈물이 왈칵 쏟아져 버렸지요. 보이지 않는 방사능과 (그 당시)이제는 괜찮다고 말하고 있는 일본 정부의 발표가 있었지만 사람들은 이 방사능 피해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서로 울고 같이 간 목사님께서 아주머니와 핵발전소 안에 갇혀 있는 아들을 위해 기도해도 되겠냐는 동의를 얻은 뒤, 이들의 평화를 위해 함께 기도했고 사진촬영까지 하면서 잠깐이지만 우정을 나누었어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본 핵발전소에 대한 두려움과 아픔의 표현은 양분되는 듯 보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거나 그 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등으로 문제를 외면하면서 일상생활을 이어가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와는 다르게, 자기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혹은 의도적으로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마스크를 쓰거나 직접 정보 수집을 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실시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적극적인 태도를 지닌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 여정 전에는 핵발전소의 위협, 특히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 민감하지 못했었지만 이 기회를 통해 그것이 내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그것으로 환경활동가의 삶으로 연결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곳에서의 문제는 여전해 보입니다.
여러 기사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피폭 15개월 뒤 흰 반점.."축산 40년에 이런 일은 처음"
그리고 노후된 핵발전소를 중단하지 않고 신규핵발전소를 짓는 이 대한민국 땅, 어디에도 안전지대는 없다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저는 핵발전소와 정부의 에너지정책에 대해 제대로 알고 핵 없는 사회를 향한 발걸음을 떼려고 합니다.
오늘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난지 5주기가 되는 날이죠.
그래서 이 사고와 관련한 저의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2011년에 일어난 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1주기를 맞이하여 센다이와 후쿠시마, 도쿄 지방엘 갔었습니다. 예전에 일하던 곳에서는 일본 청년, 재일교포 청년, 그리고 한국 청년들의 연대체가 있었고 해마다 공동연수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때마침 핵발전소 사고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깡그리 날려보낸 대지진을 계기로 그. 곳에 가 보기로 했지요.
당연히 처음에는 괜찮은거냐, 이것이 올바른 결정이냐에 대한 논의가 격렬하게 있었지만 어찌됐든 가게 되었어요.
센다이 지역 활동은 접고,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에 집중해서 이야기할게요.
우리가 갔던 지역은 도호쿠 - 후쿠시마현(福島県)에 위치한 아이즈 와카마쓰 지역이었습니다. 사카에이마치교회의 어린이집에서 핵발전소 피해에 대한 정신적 치유와 확산방지 노력, 그리고 한국의 상황도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한국 청년들은 한국의 미디어가 어떻게 후쿠시마 사고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공유하였습니다.

그리고 청년들이 핵없는 세상을 위해 어떤 활동들을 하는지도 사진으로 공유했지요.
이 사진은 일본에서의 시민들이 어떤 활동들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일본의 상황을 들을 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고 상상하지 못했던 부분, 삶의 터전을 버려야 하는 점은 저에게도 아픔으로 다가왔습니다.
역시나 일본의 상황을 들으면서 우리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질 수 밖에 없었고, 세상에...를 연발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전체 모임을 한 후 조별로 느낌을 나누었는데, 통역 시간이 들어가니 소요시간이 두 배 이상 들었지만 서로의 다양한 경험과 생각, 느낌을 공유하는 시간은 어떤 지식으로도 채울 수 없는 그 무언가였습니다.
공부와 공유의 시간이 끝나고 교회에서 준비해 준 음식으로 공동식사를 했습니다.

사실, 센다이에서도 그렇고 이 곳에서도 식재료 원산지가 아주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왜냐하면 공기 중으로 피폭되는 것보다 음식으로 체내에 흡수되는 피폭이 가장 무서운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인데요, 먹거리조차도 믿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면서 식사해야 한다는 점이 또 다시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그 두려움도 맹위를 떨치지 못하긴 했지만요 ㅋ
버스 안 인데요, 센다이에서 와카마쓰로 이동하는 내내 버스 안에는 방사능 측정기가 한 쪽에 자리하고 있었어요. 4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어느 거리를 버스가 내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방사능 피폭량이 올라갔고 우리는 미리 준비한 마스크를 착용했습니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눈길로 버스 밖을 보고 있는데 사람들은 피폭량을 아는지 모르는지 길을 걷고 있는데 무척이나 공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곳은 후쿠시마현에 있는 초, 중급 조선학교 운동장인데요,
방학이라서 아이들이 없는 것도 있었지만 문제는 이 운동장에 피폭량이 상당해서 아이들은 더 이상 이 운동장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참으로 아픈 사연들이 즐비했습니다.
운동장 한 켠에는 피폭량을 측량하는 기계가 서 있는 풍경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습니다.
학교 안에서의 후쿠시마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후, 단체 사진을 찍었는데요, 여기가 바로 운동장과 연결되어 있는 학교 건물 정문인데 조금만 더 나아가도 위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참 이게 뭔가.. 싶었습니다.
어린이집과 가까운 곳을 돌아보기 위해 일본어가 가능한 목사님과 길을 나섰고 그 끝에는 미니 붕어빵 같은 것을 파는 집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너무 귀엽고 맛있을 것 같아 우리도 모르게 가게문을 열고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우연찮게 주인과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더 가슴 아픈 이야기가 우리를 기다릴 줄 몰랐습니다.
낯선 사람들에게 마음을 잘 열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는 일본인이었지만 후쿠시마 핵발전소 시설에서 아직도 나오지 못하고 일을 하고 있는 아들과 암 투병을 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털어놓으셨습니다. 그 아주머니께서는 아프고 힘들지만 사람들 앞에서 그 두려움이나 슬픔을 드러내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면서 많이 우셨어요. 그 아픔을 나는 감히 다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냥 눈물이 왈칵 쏟아져 버렸지요. 보이지 않는 방사능과 (그 당시)이제는 괜찮다고 말하고 있는 일본 정부의 발표가 있었지만 사람들은 이 방사능 피해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서로 울고 같이 간 목사님께서 아주머니와 핵발전소 안에 갇혀 있는 아들을 위해 기도해도 되겠냐는 동의를 얻은 뒤, 이들의 평화를 위해 함께 기도했고 사진촬영까지 하면서 잠깐이지만 우정을 나누었어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본 핵발전소에 대한 두려움과 아픔의 표현은 양분되는 듯 보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거나 그 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등으로 문제를 외면하면서 일상생활을 이어가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와는 다르게, 자기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혹은 의도적으로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마스크를 쓰거나 직접 정보 수집을 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실시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적극적인 태도를 지닌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 여정 전에는 핵발전소의 위협, 특히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 민감하지 못했었지만 이 기회를 통해 그것이 내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그것으로 환경활동가의 삶으로 연결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곳에서의 문제는 여전해 보입니다.
여러 기사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피폭 15개월 뒤 흰 반점.."축산 40년에 이런 일은 처음"
그리고 노후된 핵발전소를 중단하지 않고 신규핵발전소를 짓는 이 대한민국 땅, 어디에도 안전지대는 없다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저는 핵발전소와 정부의 에너지정책에 대해 제대로 알고 핵 없는 사회를 향한 발걸음을 떼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