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자유주의 하면 어떤 것들이 생각납니까?”
민영화, 작은정부, 시장개방, 무한경쟁, 초국적기업, 금융위기, 금융자본 등등 여러 단어들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이날 특강을 해주신 홍기빈 박사님은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라는 것에 대한 명확한 정의 없이 정치적인 수사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마치 그것이 지금의 세계적인 위기의 원인이 되는 양 이야기하게 되지만, 이는 실제로 위기를 일으키는 주범들을 가려주는 장막같은 역할을 한다고도 말합니다. 재벌이 신자유주의가 아닌 것 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를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을까요?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신자유주의는 만물, 만사의 상품화. 그리고, 상품화된 모든 것들을 금융적인 관점에서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전에는 상품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 상품취급을 받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최근 자주 언급되고 있는 “결혼시장”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 여성이 결혼을 하기 위한 상대를 고르려고 합니다. 한 사람은 33세 검사이고,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삽니다. 다른 사람은 35세로 지방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부모님은 모두 살아계시고 아버지는 5급공무원으로 정년퇴직을 했다고 합니다.
이 두 사람 중 누구와 결혼을 해야 더 나은 선택을 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선 두 남자의 현재 연봉 수준을 비교해봅니다. 두 사람 차이의 연봉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다면, 이들의 미래 가치를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얼만큼의 돈을 벌 가능성이 있는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을 유산은 얼마나 되는지, 직업의 안정성은 어떻게 되는지 등등 미래의 기대수익과 미래의 위험을 예상해봅니다. 그러면 위험은 적고, 기대되는 수익이 높은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겠죠.
이렇게 현재 벌어들이는 수입, 미래의 가치, 위험도 등을 계산하여 상대방의 자산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대단히 합리적인 것 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가치를 수치로 평가하기 어렵고 변수가 많다는 점입니다. 더욱이 이와같은 평가만으로 성사된 결혼 생활이 과연 행복할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취업시장”에 뛰어드는 젊은이들은 스펙이라는 말로 자신을 평가합니다. 그리고 더 높은 스펙을 쌓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아무리 높은 스펙을 쌓는다고 하더라도, 높은 스펙이 높은 행복지수와 대단한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산의 가치를 잘못 평가하는 일은 종종 있습니다. 2조원이 넘는 세금으로 지은경인운하는 실제로 얼마의 돈을 벌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경인운하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평가를 했던 당시의 자산가치와 현재 평가할 자산가치는 얼마나 차이가 날까요?
비슷한 예는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4대강 같은 국책 사업,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부동산 거품 가격, 주식 시장의 과열, 파생상품의 범람 등은 이러한 가치 평가의 헛점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사례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이러한 방식으로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 처럼 되어가고 있습니다 .
합리성을 가장한 비합리성이 신자유주의의 본질이며, 이는 수많은 부작용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틀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조합을 만드는 것도 좋고,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것도 좋습니다. 스스로를 자산으로 치환해버리는 대신 다른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실천해 보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하면 어떤 것들이 생각납니까?”
민영화, 작은정부, 시장개방, 무한경쟁, 초국적기업, 금융위기, 금융자본 등등 여러 단어들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이날 특강을 해주신 홍기빈 박사님은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라는 것에 대한 명확한 정의 없이 정치적인 수사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마치 그것이 지금의 세계적인 위기의 원인이 되는 양 이야기하게 되지만, 이는 실제로 위기를 일으키는 주범들을 가려주는 장막같은 역할을 한다고도 말합니다. 재벌이 신자유주의가 아닌 것 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를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을까요?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신자유주의는 만물, 만사의 상품화. 그리고, 상품화된 모든 것들을 금융적인 관점에서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전에는 상품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 상품취급을 받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최근 자주 언급되고 있는 “결혼시장”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두 사람 중 누구와 결혼을 해야 더 나은 선택을 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선 두 남자의 현재 연봉 수준을 비교해봅니다. 두 사람 차이의 연봉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다면, 이들의 미래 가치를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얼만큼의 돈을 벌 가능성이 있는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을 유산은 얼마나 되는지, 직업의 안정성은 어떻게 되는지 등등 미래의 기대수익과 미래의 위험을 예상해봅니다. 그러면 위험은 적고, 기대되는 수익이 높은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겠죠.
이렇게 현재 벌어들이는 수입, 미래의 가치, 위험도 등을 계산하여 상대방의 자산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대단히 합리적인 것 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가치를 수치로 평가하기 어렵고 변수가 많다는 점입니다. 더욱이 이와같은 평가만으로 성사된 결혼 생활이 과연 행복할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취업시장”에 뛰어드는 젊은이들은 스펙이라는 말로 자신을 평가합니다. 그리고 더 높은 스펙을 쌓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아무리 높은 스펙을 쌓는다고 하더라도, 높은 스펙이 높은 행복지수와 대단한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산의 가치를 잘못 평가하는 일은 종종 있습니다. 2조원이 넘는 세금으로 지은경인운하는 실제로 얼마의 돈을 벌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경인운하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평가를 했던 당시의 자산가치와 현재 평가할 자산가치는 얼마나 차이가 날까요?
비슷한 예는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4대강 같은 국책 사업,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부동산 거품 가격, 주식 시장의 과열, 파생상품의 범람 등은 이러한 가치 평가의 헛점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사례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이러한 방식으로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 처럼 되어가고 있습니다 .
합리성을 가장한 비합리성이 신자유주의의 본질이며, 이는 수많은 부작용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틀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조합을 만드는 것도 좋고,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것도 좋습니다. 스스로를 자산으로 치환해버리는 대신 다른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실천해 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