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수세미의 진실

화려하지 않은 꽃이다.
난 그게 꽃인 줄 몰랐다.
한올한올 뒤엉켜 있지만
정연한 질서가 살아있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
난 그게 꽃인 줄도 몰랐다.

수세미하면 우리는 흔히 부엌이나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주로 녹색 계통의 약간 거친 도구를 떠오르게 된다. 수세미는 이미 ‘문지르는 도구’의 대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특히 젊은 주부들에게 수세미는 그릇을 닦기 위해 특수(?) 설계된 어떤 물질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몇 달 전 우연히 들른 생협 가게에서 나는 독특하게 생긴 수세미를 발견하였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네모반듯하고 천편일률적인 모습이 아니라 이리삐죽 저리삐죽 저마다 자기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수세미들이었다. 만져보니 까끌까끌하면서도 손에 잡히는 폼이 영락없는 수세미였다. 손가락 사이로 무언가 빠져나오는 것이 있어 살펴보니 호박씨 같이 생긴 씨앗들이었다. 진짜 수세미였다. 어릴적 아무데나 자라나고 있던 그 식물 수세미였던 것이다. 씨를 뿌리지 않아도 잡초처럼 피어나던 그였다. 지나가다 슬쩍 따다 말리면 훌륭한 그릇 닦이 도구로 변하던 그였다.

역사 속에는 우리가 어릴 때 배운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가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무슨 시대인가. 지금은 플라스틱기이다. 모든 것이 석유에서 추출되거나 석유로부터 가공되어진 물품을 최대한 많이 사용하는 시대인 것이다. 돌로 만든 그릇에 담아먹던 음식들은 이제 뚜껑달린 플라스틱통에 담겨 냉장고 속에 꽁꽁 숨어 지낸다. 지천에 깔린 식물을 툭 따서 말리면 퐁퐁 없이도 닦을 수 있던 그릇들은 슈퍼나 마트에서만 살 수 있는 가짜 수세미들에게 빡빡 씻기어진다. 지천에 깔린 것은 결코 상품이 될 수 없기에 시장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5년전 나는 아프리카에서 온 한 명의 여성과 몇 달을 같이 지낸 적이 있다. 그는 그 지역의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몇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과일가게에 들렀을 때였다. 그는 돈도 지불하기 전에 과일을 덥썩 집어 먹는 것이었다. 당황한 나에게 오히려 그가 반문하였다. 떨어진 거 주워 먹는데 왜 돈을 내냐는 것이었다. 자기 나라에서는 나무에 달린 과일도 그냥 따먹는다는 것이었다. 자본주의가 늦게 도입된 탓인지, 도무지 시장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그들에게 석유로 만든 수세미야말로 이해할 수 없는 먼나라 얘기일 것이다.

우리는 빵과 크림으로 덮힌 헨델과 그레텔의 동화처럼 모든 것이 석유로 덮힌(만들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몸의 주위에는 의식주를 비롯하여 의약품, 화장품, 전자제품, 자동차, 생활용품, 장난감 등 모든 것의 중심에 석유(플라스틱)가 있는 것이다. 석유(플라스틱)제품의 유해성을 떠나 그 공급량은 이제 한계에 달해있다. 많은 학자들이 이제는 석유생산량이 감소하는 시대로 들어가게 되었음을 경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1인당 에너지소비량은 국민소득이 한국의 3배가 넘는 일본, 독일과 비슷한 수준이다. 석유로 환산해서 1인당 연간 약 4톤에 달하는 1차에너지를 소비하는 셈이다. 헨델과 그레텔처럼 크림으로 덮힌 집을 다 먹어치우고 난 후에, 우리는 살아남을 길이 없을 것이다. 석유가 고갈되어가는 시기, 우리는 9.11테러 이상의 더 큰 석유전쟁에 돌입할지도 모른다.

쭈글쭈글하지만 자연이 담겨있는 수세미. 바로 그들이 우리를 살릴지도 모른다. 해와 바람과 물(태양력, 풍력, 조력), 흙과 나무와 풀… 석유기를 넘는 우리의 다음 시대는 바로 자연기가 되어야할 것이다.

우이지영

* 이 글은 환경정의 소식지 [우리와 다음]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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