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활동] 마을부엌 현장조사# ⑥_동네부엌 활짝

2021-12-16

환경정의 먹거리정의센터는 2021년 전국에 있는 마을부엌을 조사했습니다. 이중 특별히 의미 있는 마을 부엌 10곳을 찾아가, 현장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가을이 한창이던 11월 첫째 주, 금천구에 위치한 동네부엌 활짝에서 김선정 이사장님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Q1. 건강한농부 협동조합. 동네부엌 활짝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도시농업을 배운 사람들이 모여가지고 비영리 민간단체 금천 도시농업 네트워크라고 단체를 만들어서 활동하다가 금천구의 한내 텃밭이라고 예전에 공장 부지였던 5천 평 부지에서 시작했어요, 주말 농장을 2년 동안 운영한 거지만 5천 평이다.

보니까 워낙에 많이 이용하는 주민 숫자가 많았어 가지고 거기를 우리가 이제 단체가 운영하면서 교육 사업도 하지만 판매를 해야 되는 상황이고 그때도 역시나 위탁금은 1년에 행사 몇 번 하고 교육하고 했어요. 그때 협동조합 모델을 생각한 거예요. 퇴비, 모종을 팔아야 하는데 이거 팔면서 교육을 자연스럽게 하고, 이게 판매 사업이니 비영리 민간단체 영역에서 구분해서 해보자 했는데, 협동조합 법이 통과된 직후이거나 직전이거나 이래요 그래서 협동조합으로는 안 하고 이민 단체로 1년을 했어요. 트럭을 한 대 사가지고 16명이 100만 원씩 받아갖고 1600만 원을 만들어서 1200만 원짜리 차 한 대 사고 퇴비 좀 사고 그래서 시작한 거예요. 2년 하고 대체 부지를 찾아야 되고 하니까 이제 서울 시민 참여 예산이 2012년에 시작했거든요. 시민참여 예산 위원도 신청해서 하고 예산도 내고 그래서 도시농업 관련한 예산을 한 2년 연달아 내가지고 예산을 꽤 받아왔어요. 농장이 없어져도 지속적으로 할 수 있게 금천처럼 땅이 없는 도시에서 학교 텃밭이나 옥상 텃밭 골목 텃밭이 활성화돼야 한다 해가지고 그 관련한 예산을 받아서 쭉 펼친 거예요. 텃밭 조성 사업을 자연스럽게 하게 돼서 목공방을 하나 지어가지고 남부여성발전센터로 들어갔는데 거기서 이제 조성 사업 위주로 하다 보니까 이게 우리가 농사 지어서 뭔가 먹거리 관련한 일도 하고 아기자기한 일을 했던 것 같은데 맨날 노가다만 하는 느낌이거든요. 이 때 협동조합으로 바뀌었어요. 여성 조합원도 많고 우리가 또 텃밭에서 키워낸 걸 활용하는 어떤 먹거리 그런 쪽으로 사업을 해보면 어떠냐라고 이제 계획했어요. 공간을 이제 알아보고 다녔는데 구청장님이 소식을 듣고 좋은 데가 있다. 기다려봐라 사실은 그렇게 얘기를 해줘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사업은 못 하는 곳이었던 거예요. 그래도 워낙에 새로 생긴 공원이고, 아파트 단지 입구고 구청 바로 앞이고 공간 자체가 굉장히 예쁘게 지어진 주방에 있는 시설이어서 여기서 뭘 해도 참 재밌고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가지고 제일 먼저 떠오른 게 이제 마르쉐 같은 직거래 장터를 하면 참 좋겠다. 이런 게 떠올라서 그걸 이제 지금 추진하게 된 거죠. 단체는 2013년에 만들었고, 2017년에 사회적협동조합 전환했고 일반 협동조합은 2014년에 만든 거예요.

거기가 워낙에 공간이 참 좋았어요. 뭘 해도 사람들이 잘 모이고 그러니까 이제 약간 도시농업 프로그램도 많이 했지만 먹거리 관련해서 다양한 계층들도 다양한 프로그램도 하고 또 이렇게 매주 장터를 하다 보니까 이 장터가 사람을 엄청 끌어 들여줘서 굉장히 활력이 있어요. 여기를 하게 된 배경도 이제 화들장에서 음식을 팔았거든요. 원래 판매할 수 없지만 장터라는 이제 명분으로 농산물을 좀 맛보게 하고 또 농민들하고 자원봉사는 밥을 줘야 된다 시골에서 새벽에 올라오는데, 그래서 밥상을 차렸는데 이제 장 보러 온 사람들도 밥 먹고 싶다 하고 그러니까 그러면은 농산물 맛도 볼 겸 이렇게 매주 한번 식사를 팔아보자 해서 5천 원을 받고 거의 한식 뷔페로 차렸어요. 농민들도 배 같은 거 가져와서 깔아주기도 하고, 그렇게 화들장을 200회 했어요. 식사도 촤소 100회 정도 했어요. 막판에는 그게 장을 하는지, 밥을 하는 건지 모를만큼 힘들더라고요 이게 시설이 안 되는데 후드도 작고, 식사를 200인 분씩 하니까. 나중에는 200인분이 그냥 1시간 만에 다 나가요. 그러니까 이제 그걸 하면서 느낀 거죠.

이게 조금만 메뉴를 좀 신경 쓰고 우리는 이제 사실 돈 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화들장을 활성화시키는 데 도움이 됐고 공짜밥도 아닌데 사람들이 엄청 만족스러워하면서 먹고 우리가 못하게 됐을 때 굉장히 엄청 아쉬워 하셨거든요. 어르신들도 좋아하셨고, 어이 엄마들도 좋아했어요. 저녁에 애들 놀리고, 아빠들 퇴근할 때 저녁밥으로 먹고, 그렇게 집에 갔어요. 사람이 공짜밥만 좋아하는 게 아니고 이렇게 돈을 좀 내지만 또 부담스럽지 않고 가까운 곳에서 내가 좀 좋아하는 음식 먹을 수 있고 이런 것만 해도 이것도 참 큰 복지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도 이상적인 건 거기랑 여기를 병행하는 거였어요. 판매 사업은 여기서 하면서 기존에 하던 사업은 교육이나 이런 것도 다 거기서 하고 두 곳이 같이 돌아갔으면 굉장히 시너지가 났을 거예요. 근데 거기가 이제 못하게 되면서 여기로 왔어요. 2019년 9월 지금 자리에 계약을 했죠. 코로나 터지기 딱 3개월 전에.


Q2. 마을부엌 프로그램은 무엇이며, 주로 어떤 분들이 참여했나요?

튼튼은 언제 시작하셨나요?

튼튼은 활짝 열면서 같이 시작했어요. 젊은 엄마들이 주로 우리 멤버들이었고, 옛날 직장 다니면서 애 밥을 좀 믿고 어디다 맡겨서 챙겨 먹이고 싶은데 사실 어디 가서 먹으라 할 만한 데도 없고 보통 밥집이 술집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애 혼자 가서 먹으라고 하기도 그렇고 그럴 때가 많았어요. 애 엄마들이 이제 막 하교길에 데리고 좀 와서 챙기고 이런 걸 또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애가 엄마 기다렸다가 엄마 만나서 같이 가고 막 이런 것도 많이 했었거든요. 우리가 이제 먹거리를 약간 아이들 좀 젊은 주부들과 아이들로 좀 포커스가 맞춰졌어요. 커뮤니티 센터에서 먹거리 관련한 걸 했을 때 가장 어찌 됐든 계속 주기적으로 같이 했던 사람들이 아기 엄마들이고 제일 필요성을 느끼고 있고 그리고 또 우리는 그냥 먹거리가 아니라 건강한 먹거리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사실은 애들이 중요한데 그쪽을 우리가 좀 관심 있게 보면 좋겠다 해가지고 여기를 사실 조금만 가게인데 여기서 뭐를 얼마나 막 하겠어요. 이제 일본 어린이 식당 유형이 참 좋겠다. 우리 동네 같은 데서 확산시키기 좋겠다 그래서 이제 한번 해본 건데 실제로 하면서는 좀 그런 게 처음에는 좋았어요.

처음에는 여기에 아예 어린이 전용 식당이니까 애들이 와서 돈을 딱 2천 원은 얼마나 이렇게 자랑스럽게 계산 하기도 하고, 친구들 5명 데려와서 쏘기도 하고. 이렇게 좀 화기애애하고 또 이렇게 눈여겨 봐지는 애들도 있고 얘는 좀 더 챙겨야겠구나 이런 애들도 있고 그랬는데 코로나 터지고 애들이 안 오니까 이제 약간 분위기가 좀 달라졌어요. 이제 대면이 좀 안 되고 그러니 대화도 안 하고 그리고 도시락은 사전 예약을 안 받고 그냥 무작위로 할 수가 없었어요. 그때는 그 시간에만 오면 누구든지 밥을 먹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도시락이기도 하고 예약을 해야 되는 상황이에요. 한정 없이 만들어놓고 기다릴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예약제로 하니까는 엄마들이 잘 챙기는 애들이 오고, 진짜 필요한 아이들이 안 오는 느낌이 드니까 좀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가 있고 그래서 이제 사실 코로나 터지고는 고민을 좀 많이 했는데 지역아동센터나 센터장님들하고도 얘기해봐도 지역아동센터도 진짜 필요한 애들은 요새 안 온대요 다 집에 있대요 꼼짝도 안 하고 집에 있대요.

우리 동네는 조합원들도 많고 활동하는 사람들도 여기 살고 봉사하는 사람들끼리는 다 어느 집안이 어렵고 어느 집에서 인장이 대략 알더라고요 그래서 좀 갖다 줄 수 있으면 우리가 배달까지 하기는 좀 그렇고 봉사하는 사람들이 아름아름 갖다 준다 해서 만들어 줬는데 한두 번 갖다 줘요. 벌써 오늘 얘기하면 내일 열 명 정도 리스트가 나와요 이제 엄마 없는 집부터 할아버지랑 사는 애 이런 식으로 조금 나오더라고요 애한테 도시락 가지러 가라 해도 애가 찾으러 안와요. 방법을 모색하는데 쉽지 않아요.

아이들이 편의점에 가서 결제하는 이유가 있을 거예요. 편견 없이 지을 수 있는 공간이 또 편의점이잖아요. 누가 봐도 식당에 가서 애가 혼자서 밥을 먹는 게 정상적이지 않아 보이잖아요. 그거에 대한 인지가 없이 그냥 우리는 기술적인 거로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튼튼도 처음에는 엄마가 데려오고 아빠가 데려오고 막 그랬어요. 그런데 이제 익숙해지면 아이만 보내세요. 그냥 애들끼리 모여 있으니까 문 열고 들어오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거죠. 지금은 애들이 확 들어오는 게 또 어른들끼리 있으면 위화감이 있죠.그 런 부분들까지도 좀 배려해서 뭔가가 돼야 되는데 그렇게 정책은 안 나오잖아요.

애들이 밥만 먹으러 오는 게 아니라 뭐 물 마시고, 급하게 화장실 볼일 보러 오고 그리고 이제 친해지면 진짜 자기 집처럼 드나들거든요. 괜히 지나가다 인사하고, 정들고 이랬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어요. 그냥 도시락만 추고 아쉬워요.

청소년 식당 든든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그거는 공모 사업이에요. 청소년 사업을 하는 데가 있는데 이제 우리가 교육복지센터랑 협업도 많이 하거든요. 교육복지센터에서 또 이제 청소년 사업들을 학교 부적응 청소년 사업도 하고 학교에서 출석 정지 당한 애들 사회봉사를 기관에서 해야 하는데 금천에 없어서 다른 지역에 간다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 같은 협동조합에서 일거리도 있고 관계도 맺고 그 얘기를 했는데 그게 이제 제가 1호점이 된 거예요. 건강한 농부가 별별 철학원 1호점 해서 지금 현재 7호점까지 있거든요.

우리가 사실은 지금 장사가 너무 안 되니까 우리도 지금 문 닫게 생겼는데 안 할 수 없어서 하지만 참 이게 투자를 하기 어려운 구조였어요. 월세 내기도 힘든 상황이어 가지고 그래서 지정 기부금 단체 등록을 해서 그래도 사람 몇 명이라도 돈을 모으면 우리가 좀 덜 부담스럽기도 할 수 있고 사실 시절이 더 좋아지면 우리가 또 돈을 더 벌면 또 투자도 할 수 있고 또 이제 좀 이런 게 확대가 되면 우리가 처음부터 1호점이라고 한 게 동별로 만들자였거든요. 이제 좀 2호점 3호점 4호점으로 낼 수 있지 않을까 해가지고 그걸 염두에 뒀던 게 있었는데 워낙 안 풀리니까 이제 서울시 공유기업을 작년에 공유기업을 모집한다고 그래서 우리는 공유 사업 하고 있으니까라고 해서 했어요. 근데 무슨 혜택이 있는지 몰랐는데 지원을 받은 거죠. 그래서 지금 6호점까지 확보는 했는데 이제 한 두 군데는 좀 잘 안 돌아가요. 그 공간 자체가 커뮤니티를 못하고 있는 데는 안 되더라고요 첫 번째 2호점은 하자마자 그냥 애들이 많이 와가지고 음식 부족하고 막 그랬다 그러는데 2호점 3호점은 원래 이제 구청에서 맥양집 없애려고 골목 이런 사업하는데 이렇게 이제 공간 아주 조그만 공간들을 이렇게 사회적 경제한테 들려주고 이런 거 두 군데를 이렇게 했는데 처음에는 지역하고도 네트워크가 잘 돼 있어서 자기들이 홍보하면 잘 될 거라고 그러더니 잘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게 운영 주체가 참 중요하구나 그래서 나머지는 또 이제 약간 청소년 쪽이에요. 카페 자리라고 거기는 아예 청소년 대안학교예요. 거기하고 한 군데는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교회인데 지역아동센터랑은 별개로 교회에서 청소년 공간을 만든 거예요. 우리가 이제 어떻게 하고 있냐면 만들어서 달라면 만들어서 주고 해서 하겠다 하면 인건비하고 재료비를 지원해줘 그러니까 이제 해서 하겠다 하면 이제 우리가 맡기는 거죠. 대신에 재료를 좋은 걸 써라 쉽지 않아 아무 재료나 쓰면 안 된다 이런 것만 이제 적어도 농산물은 국내산 이상은 써야 된다 수입산 쓰지 말자 뭐 이런 거 그런 기본적인 약속을 하고 직거래 농산물 우리 매주 화요일날 오니까 직거래 농산물을 이용해 주면 더 좋고 두부나 계란 같은 거는 우리가 받아서 갖다 주기도 하고 두 군데는 자체적으로 만들고 세 군데는 우리가 만들어서 갖다줘요. 애들이 많이는 안 오고 보통 10명 남짓,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는 교회도 15명 막 이렇게 온대요. 올해까지 이렇게 든든은 해보고, 이제 지속적으로 할 만한 곳만 선정을 하긴 한 거거든요. 일단 2천 원 후원금은 받아라 이제 자연스럽게 안 받아도 되는 상황에 아이들은 안 받아도 좋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후원을 하게끔 하는 게 좋다. 왜냐하면 이웃을 위해서 이렇게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을 제시를 해서 진행을 해요.


 



Q3. 마을부엌은 어떻게 운영했나요?

공간 임대료가 130만 원, 1층이냐 아니냐 차이도 있고 이면 도로냐 아니냐 차이도 있는데 우리는 사실 이면 도로도 상관없었는데 이제 최대한 손 안 대는 데로 온 거예요. 인테리어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니까 이렇게 좀 허름한 데 가잖아요. 그러면은 뜯어 고치는 데도 몇 천이 들어가더라고요. 여기도 얼추 꽤 들어갔는데 부엌 공사하고 막 이러느라고 기본적으로 여기는 손 대지 않았거든요.

근데 운영해 보면 임대료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인건비가 가장 높아요. 활짝에서는 지금 한 분이 그만둬서 제가 지금 여기에 거의 붙어 있어요. 그래서 메인 셰프 한 명 있고 저랑 그다음에 이제 청년 활동가 뉴딜 활동가 받아가지고 2명이 여기 더 4명이서 일을 해요. 사회적 기업이 돼가지고 50% 정도 인건비 지원을 받는데 그게 이제 3명을 지원받고 있거든요. 사무실에 이제 근무하는 사람 한 명 있어야 되고 또 여기도 그렇고 여기도 두 명은 최소 고정 인력이 있어야 되고 그다음에 우리 공방이 또 있다 했잖아요. 공방이 또 한 명이 있어야 되고 그래서 고정 인력은 4명이거든요. 거기에 이제 3명의 인건비는 절반이 나오고 한 명의 인건비는 전부 우리가 이제 내고 있고 하니까 이게 한 달에 양쪽에 임대료하고 인건비하고 해서 천만 원이 숨만 쉬어도 천만 원이 나가요.

우리가 원래 수익 모델이긴 했죠. 구청이랑 관계가 안좋아지면서 관에서 하는 게 하나도 없어요. 영향력은 안 받고 있는데 지금 아주 어렵게 운영하고 있죠 거기에다가 이제 코로나까지 터져서 이제 사실은 되게 어려웠죠. 작년에는 3천 정도 적자를 봤거든요. 조합원들이 돈 좀 더 각출하고,

초반에는 연말에 여기 송년회도 한 팀씩 맨날 예약 받아서 하고 했는데, 코로나 터지니까 단체 손님이 없잖아요. 우리가 처음에는 원래 개인을 겨냥한 반찬 정기 배송이나 이게 수익 모델로 잡았던 건데 처음에 반찬을 해보니 개인들을 접근시키는 데 시간이 엄청 걸리고, 지역사회 네트워킹이 돼 있으니까 단체들이나 이런 데가 먼저 우리를 이용하게 되잖아요. 반찬을 맨날 만들었다가 푸드뱅크에 기부만 열심히 하고 안 되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정기 배송을 시도를 하지 않고 이거는 좀 어렵겠다. 단체를 더 뚫고 오히려 좀 금천을 좀 더 벗어나서 서울 좀 서남부권이라도 확대를 시키면 어떨까 왜냐하면 큰 행사 몇 개를 이렇게 잡아서 이렇게 진행하면 어떨까 그러면 여기 공간이 훨씬 더 자유로우니까 여기서 뭘 이것저것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꿈을 꾼 거예요. 그런데 코로나 터져서 다 멈춘거죠. 개인을 겨냥한 도시락도 배민이나 이런데 통해야 하는데 어렵고, 플랫폼이 2-30퍼센트를 가져가니까 마진이 안남아요. 우리가 생각하고 꿈꿨던 가치를 다 추구하면서 이 일을 하려고 하니 명색이 매출이 천이었지 사실은 남는 게 없는 장사를 했어요. 재료를 어디까지 허용하냐 뭘 쓰냐 이런 것도 되게 논란이었고 처음에는 완전히 배운 대로 정석대로 했으니 마진이 너무 없었던 거예요. 그래도 이제 재밌게 했는데 코로나 터지니까 도시락 사업을 해보려고 애를 썼는데 그건 안 되는 일이 됐고 이제 반찬 정기배송을 금천구 안에서 집배송만 하니까 그래서 이제 그렇게 하는데 어느 정도 그래도 시작할 만큼이 모인 거예요. 우리가 아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지만 안 그렇고 이게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사람들이 신청을 하는 그 재미가 있었어요. 일회용기 사용하지 않고 락앤락 통 사서 왔다 갔다 하고, 많이 이용을 해야 되는데 그렇게 많이 이용하지는 않아요. 몇 달 먹으면 물리니까 또 쉬었다가 오기도 하고 계속 멤버가 어느 정도 교체된 멤버는 그 숫자가 늘 있는데 거기에 이제 플러스 뭐 있다면 간혹 뭐 주거 복지나 이런 데서 프로젝트로 그 대상자들한테 반찬 꾸러미를 보내주게 한다든지 내게 한다든지 학교 한 군데서 선생님이 이제 조식 못하니까 조식 예산으로 반찬 꾸러미를 신청을 한다든지 그런 거 좀 있었어요.

재료비는 어떤 것으로 하시나요?

식재료가 아예 국내산이 안 나올 때가 있어요. 올해 내내 브로콜리가 국내산이 안 들어왔어요. 그러니까 그게 이제 막 생협이나 겨우 구할 수 있는 건데 비싸고 되게 비싸요 일반 시중에 그래도 일반 채소 가격이 나와야 되잖아요. 국내산 구하기가 힘들고 그럴 때가 식재료가 그럴 때가 있고 어찌 됐든 숙주나물이나 이런 것도 되게 생협가야 하고, 간장은 도저히 맛을 낼 수가 없어서 시판 간장을 쓰고, 식용유만큼은 이제 gmo 안 쓰고 하는데 그 금액도 상당하고 고춧가루 이런 것만 국내산 써도 엄청 재료비가 상당해요. 우리가 지금 된장하고 고추장은 담아서 쓰는데 파는 거랑 살짝 섞었어요. 맛이 시판을 못 따라가요. 그런 것들을 타협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사실 타협을 안 하면 돈이 안 되고 어묵이나 크래미 정도 타협을 보고 나머지는 다 직접 다 만들어 써요. 조리하는 선생님도 스트레스가 많으시고, 사람들은 맨날 반찬이 그게 그거라고 그래요.


Q4. 마을부엌의 성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튼튼이든 든든이든 활짝이든 사실은 저는 활짝도 약간 먹거리 커뮤니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영리를 추구하기는 하지만 이게 있어서 또다시 다른 것들을 파생할 수 있는 거고 이거에 대한 목적이 있는 거니까. 그전에도 지역사회랑 네트워킹이 안 된 건 아니었지만 약간 이제 먹거리가 주는 그런 게 있어요. 먹는 거가 주는 효과가 좀 확실히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좀 더 이렇게 네트워킹이 좀 촘촘하게 된 게 있어요. 새롭게 알게 된 기관들이나 이런 아주 소모임이나 이런 데가 좀 더 촘촘하게 알게 됐어요. 처음에 제가 배달도 제가 다 했거든요. 그러니까 온갖 곳을 제가 다 돌아다니게 되는 거에요. 마음이 풀리면서 다 얘기하기도 하구요.

지역아동센터도 그렇고 약간 복지관도 그렇고 곳곳에 이제 지금 기후 위기 대응하면서도 그렇고 약간 먹거리 관련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모이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그전에는 사실은 우리가 도시 농업이 일부였는데 뭔가 지역사회를 묶어 나갈 수 있는 매개가 된 게 아닌가 사실 매해 토론회를 계속 의도적으로 진행을 하는데 이게 약간 지역의 먹거리 돌봄 체계를 만들자 이 먹거리를 주제로 지역사회의 화두를 던지고 뭔가 정책을 제시하고 할 수 있는 집단이 없어요. 현재로서는 거의 우리가 또 그런 역할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는 우리가 지역사회 먹거리 돌봄 체계를 만들어야 된다 하는데 실제로는 뭔가 구심점이 있어야 되고 실체가 있어야 되는 거니까 현장 상황을 잘 알아야 되고 그렇게 하기에 건강한 업무가 뭔가 하나씩 쌓아가고 있는 느낌이 있어요. 고민이 될 때 우리한테 먼저 연락이 오고 계속 이제 하다못해 이제 자기들이 공모 사업을 때도 아이디어도 얻어가고 지역사회에 이제 좀 연결이나 이런 것들도 하게 되고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거점이 되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좀 그거는 하나 성과가 아닌가 생각을 했어요.

돌봄을 하고 있는 집단들도 아직 건강성에 대한 고민도 많았는데 먹거리의 건강성에 대해서 뭔가 계속 문제의식을 던지는 집단이 되니까 그것도 의미인 것 같고 저가에 어쨌든 먹이면 된다라는 거에서 이제는 건강한 먹거리로 가자 라는 게 되게 중요하게 던져지는 화두여야 되긴 한 것 같아요.


Q5. 마을부엌을 운영하면서 느끼는 어려움은 무엇이었가요?

매출이기도 하고 사실 이제 이게 건강성을 유지한다는 것도 어렵고 이게 아무튼 참 공간 고민이 제일 많이 되기는 해요. 반드시 교육이나 이런 것들이 병행돼야 되거든요. 의식이 좀 달라지고 이게 뭔지를 알고 먹는 거 하고 그냥 먹는 거 전혀 다르니까 이게 연결이 돼야 되는데 약간 지금 현재로서는 예전에 이제 커뮤니티 센터에서 막 할 때는 공간이 있으니까 교육은 충분히 하고 막 그랬는데 지금은 실전에 이제 나와 있으면 교육과 연결이 안 되니까 또 그런 부분이 있거든요. 어떤 가치를 추구하면서 그런 수익성을 가져간다라고 하는 사회적 경제 모델 자체가 사실은 험난한 여정인 것 같아요.

우리는 사실은 사업만 하기 위해서 이걸 하는 게 아니잖아요. 뭔가 이 지역사회에서 영향력을 끼치고 싶고 뭘 바꾸고 싶어서 이 일을 했는데 그런 모든 활동들이 사업에는 걸림돌이 돼요. 우리가 사실 구조도 어렵고 막 이렇게 복잡하게 하면서 뭔가 관의 도움을 안 받고 한다라는 게 실제 가능한 일이냐 이 생각이 드는 거예요. 우리가 어차피 공익적인 일을 하는데 공익적 일을 하는데 공공과 결부되지 않고 순수 민간으로 가능하다고 이 부분이 시도는 하고 있지만 가능한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그게 사실은 어려운 점이에요. 이게 가능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공간 얘기를 더 많이 하는 게 공공에서 내놓고 내놓고 기반을 내놓고 그거는 우리를 먹여 살려달라는 게 아니고 가치 추구를 이 추구하고 있는 가치에 공감하는 민과 관이 협업을 해야 된다는 거죠. 그 외의 일들은 우리가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기반은 시설만이 아니라 인정 사회적 경제를 주체로서 인정해 주냐 지금처럼 한낮 무슨 공적 자금이나 갈아 먹는 이런 기생충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고 우리가 진짜 크게 막 어떤 혜택을 받는 것도 아닌데 우리 같은 조직을 싸잡아서 기생충 보듯이 한단 말이에요.

그거는 인정을 안 해주는 거잖아요. 그럼 인정을 해주고 뭔가 그런 게 되지 않으면 이게 가능할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런 생각이 들어요.


Q6. 평소 활동하면서 생각해본 이상적인 마을부엌이 있으신가요?

위기 상황을 감지하고 뭔가 스스로 위기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뭔가 루트는 있어야 되지 않냐라는 생각인데 그전에는 참 막연했다면 이번에 코로나 터지면서는 실감을 했어요.

공공이 제일 먼저 멈추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다 집에 갇혀 있었고 아이들은 진짜 하루에 한 학교에서 먹는 게 제일 균형 있고 영양 있는 음식인데 못 먹게 되고 어른들도 마찬가지로 경로식당 못 가게 됐고 그거 다 즉석식품으로 이렇게 이렇게 한 거잖아요. 이랬을 때 이분들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누구냐면 행정은 문제 있을까 봐 아무것도 안 하려고 했고 우리 같은 데는 돌봄 사업을 원래 했었기 때문에 그럼 우리가 안 하면 이들은 어떻게 하고 있지 고민하게 되고 그럼 뭐라도 하자 해가지고 코로나 터지고 딱 3월달에 우리는 튼튼이 딱 운영 못 하게 되자마자 지역사회가 우리 튼튼 못하고 있다. 지금 경도 식당 어떻게 되냐 못 하고 있다. 그러면 자원봉사하시는 봉사단 어떻게 봉사하고 있냐 못하고 있다.

그럼 우리가 이거 계속 못할 것이냐 어떻게 어떻게라도 좀 해볼 것이냐 해가지고 모여서 마을 신문이 이제 취재를 쫙 했어요. 아이들은 어찌 됐든 돌봄을 받던 아이들은 그래도 긴급 돌봄이 되는데 어른들은 집에서 꼼짝도 못하고 집에 있어야 되고 그 당시에 어른들이 되게 더 위태로웠어요. 그래서 이제 이거부터 하자 해가지고 진짜 뭐 실질적 도움이라기보다는 각자 반찬 하나씩 만들어서 모여가지고 일단 한번 돌려보자 그래서 봉사단이 멈추고 있다길래 그럼 거기 일단 봉사하시던 뭐 한 60개소 된다더라고요 거기에 반찬 배송하자 해봤더니 이제 어른들이 쉴 때가 말이 아닌 거예요. 진짜 집 밖을 못 나가고 있는 거예요. 슈퍼도 못 나가고.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 해가지고 이제 금천에 통통희망나래단이라고 통장처럼 자기 구역에 복구 어르신을 관리하는 아주머니들이 있어요. 관이 운영하지만 민간인들이 하다 보니까 되게 좀 좀 자율성도 있어요. 제가 아는 이제 개인적으로 아는 통장 희망나래단 분한테 물어봤어요. 지금 어떻게 하고 있냐 그냥 전화로만 안부 전화만 하고 있다. 그러면 뭐가 좀 지원되는 거 있냐 가끔 이제 뭐 나오면 문고리 걸어놓고 전화해서 들어가라고 한다. 자기들도 맨 입으로 전화만 하니까 민망하다고 반찬만들면 돌려주겠다고 해서 진행했어요. 지역사회에 후원 받고, 홍보하고 해서 진행하고, 마스크 만들어서 공급하고, 마을 신문에서 청의 재난기금은 어디다 쓰느냐 이것부터 실시해라 이거 먹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냐 이것부터 실시하자라고 제안을 했어요. 그런 예산 없다고 처음에는 했는데 나중에는 했어요.

나중에 막 돈이 쏟아졌잖아요. 근데 그런 것들을 하면서 드는 생각이 어찌 됐든 다 숨직이고 있을 때 우리는 움직였다는 자부심이 지금도 그 얘기를 계속 우리끼리도 하는데 뭔가 그러면 어떻게 하고 있는데라고 빨리 조사하고 누가 제일 지금 안 좋은 상태인지 알아보고 긴급 조치를 취하고 이랬다 이런 부분들은 우리만이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마을 부엌이라든지 이런 곳들이 곳곳에 있어가지고 우리가 못 오면 도시락에도 싸서 줬듯이 뭔가 대책을 세운다는 거죠. 근데 그렇게 하기에는 관은 둔하고 민은 민첩하게 대응하고, 마음도 달라요. 어떻게든 위기 상황에서 도와줘야 진짜 도와주는 거지 그런 생각에서 이제 약간 우리 역할을 그런 식으로 규정하고 방향성 그렇게 됐어요. 커뮤니티 케어가 이런 거다 그렇게 가야 된다 좀 기억에 남는 게 그런 거고 그래서 더 거점별로 이런 데가 있어야겠구나 생각했고 경로식당도 복지관에서 한 거하고 다른 일반 민간 기관에서 한 거하고 틀려요. 복지관은 바로 문 닫고 가공식품 어르신들 가져다 드리고 해서 집집마다 쌓여 있어요. 처음에는 뚝 끊어졌다가 나중에는 여기저기서 다 오는데 그런 거 쌓인거죠.


Q7. 마을부엌이 지역사회의 먹거리 보장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다른 데랑은 좀 출발이 다른 게 도시농업도 그렇고 보면은 이제 주요하게 원래 생협이나 환경단체나 기존에 하던 흐름 내에서 많이들 하거나 그렇죠 시민단체에도 큰 조직들이 있어서 좀 부수적으로 또 연대하는 조직들이 생기거나 막 이러잖아요. 금천에는 다 풀뿌리고 다 작아요. 사실은 우리가 구로구에서 분구된 자치구여가지고 시민단체가 다 구로구에 있었어요. 분구되면서 사실은 되게 모든 게 열악한 조건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시민사회가 일단 기본적으로 열악하고 워낙에 없었어요. 저는 도시농업에 관심이 있어서 시작한 게 아니고 그 이전부터 학부모 활동도 했었고 나름 이제 그냥 자연스럽게 지역사회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가 도시농업이 이제 꽂혔을 뿐이고 도시농업이나 먹거리도 하나의 분야로서 꽂혔을 뿐이에요. 그냥 여기 지역의 문제에 관심이 있는 거지 어떤 한 분야에 제가 전문가도 아니고 이 관련한 자격증도 없고 지금 아무 기술도 없어요. 애초에 사고가 출발이 그랬던 것 같아요. 우리한테 뭐가 필요하지 지금 애들 교육이 엉망이야 그러면 좀 어차피 우리 어려운 동네니까 혁신교육이 좀 작은 학교 살리기 이런 것들이 우리 지역에서 굉장히 효과적일 것 같고 그래서 막 같이 움직이고 도시농업 좋으니까 텃밭 활동하다가 어떻게 좀 잘 이렇게 자치구랑 서울시랑 정책이 잘 맞다 보니까 또 우리도 또 급물살을 탄 게 있고 그거 하면서도 지역 언론이라든지 다른 거에도 관심 갖고 계속 우리가 또 시작을 되게 네트워크를 많이 했었어요. 주민 참여 예산제도 충분히 활용했고 지역에서 뭉쳐가지고 네트워크 만들어서 여러 가지 일들을 같이 했거든요. 지금도 어떤 일이 생기면 같이 모여서 이렇게 해요.

마을 공동체나 주민자치위원도 4년 했거든요. 주민자치회도 참여해 보고 부딪혀도 보고 이렇게 하면서 뭔가 어떻게 하면 구조가 좋아져서 좀 마을이 좋아질까를 고민을 하다 보니까 온갖곳에 다 신경 쓰게 된 것 같아요. 사람들하고도 좀 더 이렇게 멤버십이 좋은 게 사실 협동조합이 어려운 고비가 되게 많고 그렇죠 어떻게 버텨왔냐 저는 사실 사람들 잘 만나서 잘 버텼어요.

뭐 해야 된다 하면 그래도 해야지 뭐 어떻게 해 이렇게 하지 모른 척 못 하고 하니까 그냥 하다가 안 되면 망하면 그만이지 우리가 뭐 가늘고 길게 가려고 그래서 궁극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게 뭔데 여기서 돈 벌면 벌 건데 그런 생각은 저는 그런 생각이거든요. 어떻게 여기를 지켜낼 거냐 사실 지금 현재 내가 뭘 하냐가 중요한 거지 아니 지금은 아무것도 못하고 돈만 열심히 벌어가지고 나중에 성공하면 뭐 하겠어요. 돈 벌면 분열돼요 어려우니까 똘똘 뭉치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텃밭은 되게 좋은 게 뭐가 생성되잖아요. 채소가 계속 나오니까 김치라도 담거나 부침개라도 하면 나눠주게 되고 음식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늘 남잖아요. 예전에는 그냥 진짜 순수하게 푸드뱅크에 다 갖다 주고 했는데 지금은 이제 주변에 어려운 분을 드리거나, 청년 활동가들에게 줘요. 먹거리가 사람을 끈끈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있어요.


지역사회에서 먹거리 보장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동네부엌 활짝, 더 많은 이용자들이 생기고, 활짝의 가치에 동참해주는 사람들이 더 많이 생겨나길 바랍니다. 환경정의도 앞으로 동네부엌 활짝의 걸음을 응원하고, 동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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