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활동] 마을부엌 현장조사# ⑧_비덕살롱

2021-12-16


환경정의 먹거리정의센터는 2021년 전국에 있는 마을부엌을 조사했습니다. 이중 특별히 의미 있는 마을 부엌 10곳을 찾아가, 현장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사회복지법인 윙에 위치한 비덕살롱에서 최정은 대표님을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Q1. 비덕살롱 활동 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사회복지법인 윙 건물에 있는 거고, 윙 법인은 1953년도에 시작이 됐어요. 그당시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 복지 사업이 계속 이어져 온 거고, 저는 97년부터 일을 했고요 탈 성매매 여성들의 쉼과 회복 그리고 이제 자활를 위한 그런 활동들을 했죠.

4년 전에 제가 완전히 이제 실무에서 딱 물러났어요. 법인 대표만 하고 그런 일선에 일하는 거를 딱 정리를 하면서 공간을 새로 재편을 한 거죠. 여기가 사실은 제 작업실 제 사무 공간 이런 개념으로 만든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 그래서 이제 일선에서 지금은 나와서 법인 대표만 하지만 내가 뭐를 할 때가 가장 즐거울까 여러 사람하고 즐겁고 행복할까 했더니 이제 같이 밥해 먹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주방으로 꾸민 거예요.

우리가 여기서 밥을 해서 먹고 조금 다른 트랙에서 우리 여성들을 만나고 싶은 거예요. 내가 밥을 해주면서 그냥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누고 하는 거 그리고 그동안 우리 윙하고 연관 있고 신세지고 이런 분들 이제 밥도 제가 해드리고 여기서 또 다른 얘기도 하고 그러면서 이 공간을 만든 거죠.


Q2. 비덕살롱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저는 항상 이제 제가 한창 일할 때도 이렇게 은퇴 이후를 이렇게 생각했어요. 나는 어떤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을까. 윙 안에서 우리 친구들하고 같이 프로그램 하면서 배웠던 것 중에 하나를 가지고 나이 들어서 그걸 다시 재생산하면서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그냥 그런 생각을 막연하게 했었거든요. 우리가 천연 염색도 하고 목공도 하고 막 이랬는데 그거를 하려고 생각을 했었죠. 워낙에 뭐 만들고 이런 것도 좋아하기도 하고 해서 그랬는데 자연스럽게 어쨌든 이 공간이 생기게 된 거잖아요. 내가 이걸 그럼 밥을 하면서 사람들을 다시 새롭게 만나야 되겠다라고 생각을 했어요. 근데 이렇게 생각해 보면 제가 지나온 시간과 무관하지 않더라고요 왜그러냐면 우울에 빠지고 되게 슬럼프이고 그럴 때 많았죠. 우리가 만나는 여성들이 좀 다 힘들고 그럴 때마다 제가 많이 다운되고 침체에 빠지고 이럴 때마다 했던 게 밥을 했더라고요. 제가 주방에 들어가서 그냥 혼자, 사람도 많았어요. 20명, 30명 그 밥을 해서 먹이고 먹고 막 나눠 먹고 깔깔대고 그러면서 그 슬럼프들을 이렇게 이긴 것 같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내가 이거를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금까지 이렇게 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얘기하기 복잡하지만, 우리 탈성매매 여성의 삶이 제가 한창 일할 때는 이 친구들이,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벤트로 살아갔어요. 내실은 하나도 없는데 자기 삶은 엉망인데 뭔가 드러내고 보여주고 하는 것에 집중하는 거죠. 밥도 막 엉망으로 먹으면서 멀쩡히 하고 다니고 그런 것들을 너무 많이 봐서 우리 친구들이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이렇게 살아갈까 그런 고민을 늘 하고 있었죠. 그러면서 같이 공부도 하고 같이 책도 보고 프로그램도 하고 인문학 수업을 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여기 다 여성들인데, 어떻게 밥을 한 사람의 노동력에 의존해서 먹는 거냐고. 취사원 선생님이 계셨는데 여기 사람들이 다 여자임에도 한 사람의 여자에 의존해 노동력에 의존해 밥을 먹냐는 물음이 저는 굉장히 깜짝 놀랐죠.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너무 당연하게 그게 배치가 돼서 쓰고 한 건데 이러면서 생각을 해보니까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중요한 것들을 이제 등안시하고 진짜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살았더라고요 그냥 자기를 위해서 밥 한 끼 할 줄도 모르고 그것도 중요하게 안 가르치면서 막 자격증 따게 해서 취업하고 검정고시 보고 이런 시국이었어요. 그러면서 이제 다시 우리 윙을 재정비하기 시작했죠.

우리의 비전이나 우리 목표, 우리 여성들하고 어떻게 살아야 되나 이제 이러면서 많이 공부도 하고 세미나도 하고 이러면서 그런 영향을 많이 받았죠. 공부하면서 니체가 “그 사람이 누군지 알려면 그 사람이 먹고 있는 걸 봐라” 막 이런 거, 이 일상이 너무 소중하고 이 일상을 잘 바꾸는 게 이제 제일 중요하다는 거. 하여튼 그 전까지만 해도 막 자격증을 몇 개 뒀다고 대학을 보내고 그게 알려지고 사장을 만들고 막 이런 게 되게 목표였다가 바뀌었어요. 공부도 하고 밥을 우리가 직접 해먹고 그러면서 내 손으로 밥을 이렇게 해먹는 이 행위가 진짜 이게 엄청나게 중요하고 의미 있구나. 그때도 이제 반발도 되게 심했죠. 일하러 온 우리 사회복지사 선생님들 출근해가지고 점심 식사 준비를 막 돌아가면서 하고 이러니까 난리가 났고 이랬는데 그때도 제가 먼저 나서서 주방 매니저를 하면서 식사 당번도 정하고 장도 보고 음식을 두 명이 조가 되서 준비를 하면 자기가 먹은 건 자기가 설거지해서 딱 먹는 이런 시스템을 이제 계속 갔죠. 저는 그게 되게 자랑스럽고 제가 이제 실무를 그만두면서 우리 사무국장한테 센터장 자리를 주면서 제가 부탁을 그거 하나만 했어요. 내가 아무 사업에 대한 아무 터치도 안 하겠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 어렵게 이 공동체의 밥하는 거를 꼭 지켜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중간에 하루 이틀은 사먹기도 하지만 꾸준히 하고 있어요.

비덕살롱 전에도 소설 다이닝을 했어요. 몇 년동안, 유행인지도 모르고 그냥 밥을 다 같이 모르는 사람하고 먹으면서 얘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다정하게 밥 한 끼라고 소셜 다이닝도 하고 했죠. 하다 보니까 여기는 근데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건 아니고 사실은 기본적으로 이제 우리 윙하고 관련된 사람이 1순위고 우리 윙 아는 친구들 우리 활동가들 제가 정기적으로 밥을 해주고 같이 얘기를 나누는 시간 그리고 이제 여기를 거쳐갔던 친구들을 오픈하자마자 제일 처음에 제가 초대했어요. 우리 쉼터에서 있었던 친구들 와가지고 밥해주고. 이사회도 여기서 밥 먹으면서 하니까 너무 좋아하고. 윙 관련 사람들 밥해주기도 사실 바쁘죠. 나가서 먹기보다 여유를 가지고 먹자는 거죠.

사람들이 남한테 이렇게 밥 한 끼를 자기가 스스로 이렇게 해주는 거를 좀 되게 두려워하고 안 하잖아요. 왜 그럴까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자기 자신을 위한 밥상을 수도 없이 차린 사람이 나오려면 밥상을 차려 줘야 해요. 그래서 윙에 우리 친구들 밥하는 것도 사실은 그런 측면에서 시작을 한 거예요. 내가 나 자신을 귀하게 알고 정성껏 밥상을 차릴 줄 알아야지 남을 또 그렇게 해주고 그런 대접을 받고 하는 거예요.

<사회복지법인 윙 건물 내 적혀있는 글>



Q3. 마을부엌 프로그램은 무엇이며, 주로 어떤 분들이 참여했나요?

저는 여기서 여전히 그냥 밥을 공짜로 해주기도 하고요 돈을 안 받고 제가 해주고 싶은 사람 또 필요한 사람, 밥 한 그릇이 필요한 사람들한테 밥을 해주고 아무 조건 없이 그런 걸 좋아해요. 하지만 이제 워낙에 우리 법인의 수익 사업도 해야 되고 해서 돈 받고도 많이 해요. 케이터링도 간단한 거 하고 저는 이제 도시락 이런 것도 주문 받아서 해요.

코로나때 인원 제한이 있었잖아요? 비덕살롱은 그 제한에 맞춰서 딱 4인 밥상을 계속 했어요. 4인 밥상을 점심 저녁 해가지고 그 사람에 맞춰서 딱 제가 이제 메뉴를 짜고 막 메뉴판도 만들고 해가지고 이제 오면은 식사하고 충분히 3시간 2시간 반 있다가 충분히 얘기하고 밥 먹고 이제 우리들만 이렇게 있는 데니까 그런 걸 계속 해왔었어요. 가끔 원데이 클래스 요리 교실도 해달라고 그래서 그것도 하기도 하고, 동사무소 우리 지역 고독사 예방을 위한 성인 중년 남성들 무슨 프로그램을 하고 막 이러는데 밑반찬도 해주고 그냥 그건 제가 선물로 그런 것도 해요. 가끔 가다 돈도 벌죠.

우리 활동가들 또 친구들 정기적으로 제가 밥을 해주고 여기서 그러면서 이제 차단도 받고 얘기도 들어보고 뭐 그런 식으로 해요.


Q4. 마을부엌은 어떻게 운영했나요?

운영을 제가 혼자 하니까 일도 저 혼자 해요. 도와주는 사람이 없고 그러니까 제 스케줄에 맞출 수밖에 없고 제가 이거를 재작년에 만들었는데 그 한 해 동안 엄청나게 밥을 차렸어요. 한 해 동안 384명분을 했더라고요 밥을. 케이터링도 하고 여기 공간 대여, 카페에서도 막 밥 하고 하는 거 다 하니까요.

운영경비는 어떻게?

법인 사업으로 이게 다 일반 음식점 신고가 되어 있어요. 예전에 우리가 오덮밥이라고 덮밥집 했던 자리였는데 그거를 안 없애고, 주방을 꾸민 거죠. 그래서 도시락도 납품하고 수익 사업은 일반 음식점으로 남겨놔서 가끔 가다가 돈 받고 하는 것도 하고 있는 거 가지고 제가 또 그냥 하기도 하고 식재료는 내가 사기도 하고 우리 법인에서 또 장보기도 하고 그렇죠 많이도 주고 선물도 주고 하고 그러니까는 그냥 무료로 돈 안 받고 해준 사람들 해주고 또 돈을 받는 사람도 또 돈 받고도 하고 이게 병행이 됐어요.

원테이블 레스토랑해서 벌기도 하고, 그냥도 많이 해요. 재료는 선물도 많이 받아요. 제주도에서 누가 무랑 당근도 보내주고 뭐 어디서 보내주고 후원도 들어오고 제가 또 사고 해서 저는 부담이 안 돼요. 주는 사람도 많고 재료들이 그래서 뭐 그렇게 어려운 거는 없어요.

공간은 어떻게?

법인 공간이자, 제 사무실이어서 별도 경비가 들지 않아요.


Q5. 마을부엌의 성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여기 밥을 하면서 윙에서 우리가 걸어왔던 활동했던 그 시간들 그리고 저의 또 지나온 시간들을 다시 새롭게 해석하는 시간이 되더라고요. 어쨌든 윙하고 관련된 분들이 와서 밥을 먹고 또 그 옛날 얘기를 하고 앞으로의 얘기를 하고 그러면서 우리의 역사가 새롭게 재해석된다고 해야 되나 그러면서 또 같이 이제 비전도 얘기하고 저는 그게 굉장히 고맙고 되게 신선했죠. 지나온 시간들이 재해석된다는 게 그게 되게 고마운 것 같아요. 근데 이게 막 프로그램을 돌린다고 해서 이렇게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밥을 같이 먹었는데, 구조화된 프로그램이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냥 밥만 같이 먹어도 이게 뭐 반 이상은 다 된다고 봐야 되는 그 대신에 이제 그 밥을 굉장히 정성을 다해서 이제 해야 되는 거죠.

제가 이제 몇십 년 동안 탈 성매매 여성 자활 사업을 했지만 제가 이제 가장 원하고 막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 했던 게 뭐냐면 이제 우리 여성들이 너무 이 사회적 낙인이 크니까 어디서 뭘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제 계속 주장했던 거는 좀 이렇게 전염시키듯이 좀 이렇게 스며들어서 함께 살아야 되는 그게 되게 중요한 우리의 과제였거든요. 그거를 이 밥을 하면서 다 이룬 것 같아요. 케이터링도 물론 다들 좋은 의도에서 우리한테 의뢰를 하고 하기도 하고 그러시겠죠. 케이터링 할 때도 나가서 서빙하고 현장지원하고 하면은 그냥 다양한 사람들이 오는 행사를 가잖아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우리 윙이 어떤 데인지 알고 다 우호적인 그 눈초리로 다들 이렇게 대해주시고 하니까 우리 여성들이 굉장히 거기에 힘을 많이 받고 되게 편안하게 생각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여러 사람이 있는데도 섞여 들어가는 그런 걸 느꼈고 우리 공간에서 무슨 행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굉장히 다양한 사람이 오면서 우리 친구들하고 이렇게 스며들어서 이 공간이 뭔가 희석이 됐다고 해야 되나 사실은 예전에 막 이런 탈성매매 여성들,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 이런 쉼터들 굉장히 오픈 안 하고 그렇게 했는데 지금은 여기 다양한 사람들이 와서 드나들면서 밥을 먹고 하니까 자연스럽게 섞인 거예요.


Q6. 마을부엌을 운영하면서 느끼는 어려움은 무엇이었가요?

우리가 같이 할 사람을 구하려고 그래도 그러면 그거를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일을 해야 될 것 같아요. 그건 그러면 또 너무 힘들고 오래 못하잖아요. 그래서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만큼만 가늘고 길게 하자. 그리고 인건비가 따로 나갈 정도까지는 여유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유지하려고 그냥 수익을 내는 거니까요. 제가 일이 좀 되게 빨라요 그냥 해요.


Q7. 마을부엌이 우리 사회에서 활성화되기 위한 아이디어나 제안을 부탁드립니다.

그 동네에 욕구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마을부엌이 곳곳에 생기는 게 가장 중요하겠죠. 그걸 운영하는 사람의 어떤 뚜렷한 개성 뭐 이런 게 있으면 또 그것도 찾아가는 사람이 있잖아요. 양적으로 이런 공간이 좀 많으면 좋겠어요. 다만 임대료도 비싼데 그걸 유지하려면 계속 끝도 없이 일을 해야 되는데 그러면 또 이게 소진이 되고 악순환이 반복되니, 공동의 공간이라던가 그런 곳에서 운영된다면 좋겠어요. 저는 마을부엌이 꼭 취약계층을 위한 공간이라고 하지 말고, 누구나 와서 편하게 밥을 먹고 속 얘기를 꺼낼 수 있는 살롱이었으면 좋겠어요.


Q8. 평소 활동하면서 생각해본 이상적인 마을부엌이 있으신가요?

저는 좀 더 나이 들어서 이런 형태의 일을 계속할 거거든요. 근데 더 나이 들면 사람들이 오다가다 들려서 여기서 뭐 먹는 것도 해결하고 같이 나눠서 반찬도 해가고 손님이 오면 같이 먹고 하여튼 그런 밥상 그런 공간으로 계속 있고 싶어요. 몇 년 있다가 이제 정리가 되면은 제가 사는 동네로 가서 할 거예요. 제 동네에서 제가 아는 사람들이 편하게와서 밥 먹을 수 있는 요일을 정해서 이때는 뭐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고 반찬은 하고, 같이 매실액도 담그고 왜 그런 이렇게 오이지도 담그고 이런 거 해서 같이 나누고 그러면서 약간의 돈을 또 벌면서 소일거리도 하고 보람도 찾고 이런 게 제 노년의 꿈이에요.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밥 한끼를 같이 하는게 더 많은 이야기와 공감을 가져온다는 비덕살롱 최정은 대표님, 오랫동안 실무자로 일했던 경험과 마을부엌의 이야기를 동시에 들을 수 있어서 무척이나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업자등록번호 208-82-04038

(03969)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로26길 39 시민공간나루 2층        오시는 길 >>

전화 02-743-4747  |  손전화 010-2412-4747   |  

팩스 02-323-4748  |  이메일  eco@eco.or.kr   |                       문의하기 >>

                                                                                                          

DNS Service by DNSEver                                                                 이용약관개인정보처리 방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