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올해의 환경책] 고기로 태어나서

고기로 태어나서 – 닭, 돼지, 개와 인간의 경계를 기록하다

한승태 지음/ 시대의 창/ 2018년 4월

“동물들과 마주하며 지냈던 시간은 나를 약자의 고통에 민감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다.

반대로 나는 무감각해졌다.

지난 몇 년간 내 삶을 관통한 가장 일관된 정서는 분명 ‘무감각함’ 일 것이다,”

내가 읽은 다수의 동물 관련 책 가운데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책. 지은이는 4년 동안 8곳의 동물 농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거기서 그가 만난 것은 끔찍한 학대의 사슬에 묶여 생명이 아닌 ‘물건’으로만 취급 하는 닭, 돼지, 개들이었다. 이 책은 이 동물들의 비참한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거친 노동을 함께 한 외국인 노동자들을 비롯한 사람들 이야기도 충실히 담겼다. 그러니까 이 책은 동물 학대의 실상과 농장 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촘촘하게 교직한 르포 성격의 ‘노동 에세이’인 셈이다. ‘가장 낮고 고통스러운 곳에서 길어 올린 생생한 생명의 육성’ 쯤으로 요약될 법한 이 책은 우리 인간이 동물을 어떻게 대하는지, 인간과 동물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흉측하게 비뚤어져 있는지를 날것으로 증언한다. 예컨대 지은이는 쓸모 없어진 닭을 수백 마리씩이나 죽이는 일을 간신히 해내면서 이렇게 털어놓는다. “이런 식이면 사람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말도 덧붙인다. “철창이 가두고 있는 것은 닭이 아니라 가장 유해한 종류의 광기인 듯싶었다.”
우리는 평소에 고기가 살아 있는 동물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좀체 떠올리지 못한다. 시장에서 사오는 대부분의 고기는 그저 잘린 고기 조각, 저민 베이컨 조각, 얇은 살코기, 도톰한 스테이크 따위로만 존재한다. 잔혹한 동물 학대와 생명 말살이 우리 곁에서 끝없이 벌어짐에도 둔감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에서 이 책은 우리의 무뎌진 생명 감수성을 뒤흔들고 일깨우는 죽비로 다가온다. 이 책이 지닌 또 하나의 중요한 매력이 있다. 지은이의 맛깔스러운 글솜씨가 그것이다. 핍진한 묘사, 기발한 비유, 참혹한 장면을 은근슬쩍 눙치는 유머 등이 곳곳에서 빛난다. 그러면서도 결코 과장하지 않는다. 진솔하면서도 담백하다. 책은 목청 높여 동물 학대를 규탄하지 않는다. 근엄한 도덕론으로 치장된 동물권 설교를 늘어놓지 않는다. 굳이 채식을 주장하지도 않는다. 그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따름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발산하는 흡입력과 호소력은 예사롭지 않다. 우리는 또 한 명의 듬직하고도 빼어난 작가를 새롭게 보유하게 됐다. 기쁘다.

 

 

장성익
환경과생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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