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선로 아래의 삶터, 에너지전환은 환경정의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한다
황성익 | 법무법인 케이씨엘 파트너 변호사, ㈔환경정의 집행위원
*본 글은 환경일보에 실린 글입니다.
인공지능 산업,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전기차 보급, 재생에너지 확대가 동시에 맞물리면서 대규모 전력망 확충은 명실상부한 국가적 과제가 됐다. 한국전력은 2025년 5월, 제11차 장기송변전설비계획을 통해 2038년까지 송변전설비에 약 72조8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전기를 더 많이, 더 안정적으로 보내는 일은 국가 경제의 대동맥을 잇는 일이다. 그러나 에너지 대전환의 시대에 우리가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기술이나 예산의 문제가 아니다. 전기는 온 국민이 쓰는데, 왜 그 건설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희생은 특정 지역 주민들에게만 집중되는가 하는 환경정의의 문제다.
송전탑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단순히 님비(NIMBY)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도시와 첨단 산업단지가 전기를 소비하는 동안, 가공 송전선로가 통과하는 외곽 지역 주민들은 경관 훼손, 재산 가치 하락, 건강에 대한 우려, 그리고 찬반 대립에 따른 공동체 분열의 고통을 감내해 왔다. 이는 국가 전체가 누리는 전력 편익과 특정 농·산촌 지역이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환경적·사회적 부담 사이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구조적 모순이다.
과거 송전선로 건설 과정은 민주적 원칙과 충분히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사업 노선이 사실상 확정된 뒤 주민에게 전달되는 설명회는 참여라기보다 통보에 가까웠다. 1970년대 국가 중심의 효율성을 배경으로 제정된 전원개발촉진법은 신속한 전력 인프라 건설을 가능하게 한 법제였으나, 정당한 주민참여권과 합리적인 갈등조정 절차를 충분히 제도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국가가 먼저 사업을 승인하고 발표한 뒤, 주민 반발이 터져 나오면 설득하거나 방어하는 방식은 장기적으로 지역사회에 깊은 불신을 축적해 왔다.
보상제도 역시 오랫동안 현실을 따라가지 못했다. 송·변전 설비 주변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이른바 송주법 시행으로 보상과 지원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으나, 일정한 거리와 산식으로 계산되는 보상만으로는 주민들이 체감하는 지가 하락, 생활환경 변화, 공동체 균열을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 행정적으로 편리한 보상 기준이 삶의 손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밀양 송전탑 갈등은 이 한계가 임계점에 이르렀을 때 어떤 사회적 비극으로 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건이었다. 주민들이 문제 삼은 것은 단지 보상금의 액수가 아니었다. “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 우리와 충분히 상의되지 않은 채 정해졌는가”라는 절차적 박탈감이 갈등의 밑바탕에 있었다. 345kV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가 사업 착수 후 21년 만에야 준공된 사례, 동해안 HVDC 사업이 경과지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도 같은 교훈을 말해준다. 아무리 보상금을 늘리고 절차를 간소화해도, 투명한 의사결정과 주민의 자발적 수용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전력망 확충은 끊임없는 지연과 사회적 암초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2025년 9월 시행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은 범정부 추진체계 마련, 조기 합의에 대한 추가 보상, 인허가 절차 정비 등 새로운 장치를 도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이 제도가 국가 주도의 신속한 건설에만 치우칠 경우, 주민 숙의와 민주적 합의라는 본질적 절차가 형식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존재한다. 속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절차를 가볍게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2024년 6월 시행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을 실효성 있게 안착시켜 장거리 초고압 송전 수요 자체를 줄이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분산에너지가 모든 송전망 수요를 대체할 수는 없지만, 중앙집중형 전력망의 부담을 줄이고 지역별 에너지 책임성을 높이는 중요한 방향임은 분명하다.
제도 개선의 방향은 네 가지다. 첫째, 입지 선정 초기 단계부터 지중화, 우회 노선, 기존 사회간접자본 부지와의 연계, HVDC 등 기술적 대안의 비용과 편익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주민이 대등하게 논의할 수 있는 실질적 참여권을 보장해야 한다. 둘째, 공신력 있는 제3자 갈등조정 기구를 조기에 참여시키고, 지자체가 한전과 지역사회 사이에서 창의적 대안을 조율하는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모델을 체계화해야 한다. 셋째, 전력계통영향평가 제도를 실효성 있게 운용하고,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와 에너지 자립 기반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넷째, 보상의 개념을 일회성 지원금에서 벗어나 장기 지역기금 조성, 주민참여형 재생에너지 이익공유, 실질적인 생활환경 개선, 건강·환경 장기 모니터링을 결합한 상생의 제도로 발전시켜야 한다.
진정한 에너지 대전환은 발전원의 세대교체에 머무르지 않는다. 전기를 만들고 보내고 소비하는 전 과정에서 수반되는 혜택과 책임을 우리 사회가 얼마나 정의롭고 투명하게 분담하는지까지 포함해야 한다. 진정한 에너지 안보는 더 높은 전압과 더 긴 초고압 송전선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선로 아래 서 있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권리와 지역공동체의 신뢰를 지켜내는 전력망 민주주의에 터전을 둬야 한다.
출처 : 환경일보(https://www.hkbs.co.kr)

송전선로 아래의 삶터, 에너지전환은 환경정의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한다
황성익 | 법무법인 케이씨엘 파트너 변호사, ㈔환경정의 집행위원
*본 글은 환경일보에 실린 글입니다.
인공지능 산업,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전기차 보급, 재생에너지 확대가 동시에 맞물리면서 대규모 전력망 확충은 명실상부한 국가적 과제가 됐다. 한국전력은 2025년 5월, 제11차 장기송변전설비계획을 통해 2038년까지 송변전설비에 약 72조8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전기를 더 많이, 더 안정적으로 보내는 일은 국가 경제의 대동맥을 잇는 일이다. 그러나 에너지 대전환의 시대에 우리가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기술이나 예산의 문제가 아니다. 전기는 온 국민이 쓰는데, 왜 그 건설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희생은 특정 지역 주민들에게만 집중되는가 하는 환경정의의 문제다.
송전탑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단순히 님비(NIMBY)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도시와 첨단 산업단지가 전기를 소비하는 동안, 가공 송전선로가 통과하는 외곽 지역 주민들은 경관 훼손, 재산 가치 하락, 건강에 대한 우려, 그리고 찬반 대립에 따른 공동체 분열의 고통을 감내해 왔다. 이는 국가 전체가 누리는 전력 편익과 특정 농·산촌 지역이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환경적·사회적 부담 사이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구조적 모순이다.
과거 송전선로 건설 과정은 민주적 원칙과 충분히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사업 노선이 사실상 확정된 뒤 주민에게 전달되는 설명회는 참여라기보다 통보에 가까웠다. 1970년대 국가 중심의 효율성을 배경으로 제정된 전원개발촉진법은 신속한 전력 인프라 건설을 가능하게 한 법제였으나, 정당한 주민참여권과 합리적인 갈등조정 절차를 충분히 제도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국가가 먼저 사업을 승인하고 발표한 뒤, 주민 반발이 터져 나오면 설득하거나 방어하는 방식은 장기적으로 지역사회에 깊은 불신을 축적해 왔다.
보상제도 역시 오랫동안 현실을 따라가지 못했다. 송·변전 설비 주변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이른바 송주법 시행으로 보상과 지원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으나, 일정한 거리와 산식으로 계산되는 보상만으로는 주민들이 체감하는 지가 하락, 생활환경 변화, 공동체 균열을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 행정적으로 편리한 보상 기준이 삶의 손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밀양 송전탑 갈등은 이 한계가 임계점에 이르렀을 때 어떤 사회적 비극으로 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건이었다. 주민들이 문제 삼은 것은 단지 보상금의 액수가 아니었다. “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 우리와 충분히 상의되지 않은 채 정해졌는가”라는 절차적 박탈감이 갈등의 밑바탕에 있었다. 345kV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가 사업 착수 후 21년 만에야 준공된 사례, 동해안 HVDC 사업이 경과지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도 같은 교훈을 말해준다. 아무리 보상금을 늘리고 절차를 간소화해도, 투명한 의사결정과 주민의 자발적 수용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전력망 확충은 끊임없는 지연과 사회적 암초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2025년 9월 시행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은 범정부 추진체계 마련, 조기 합의에 대한 추가 보상, 인허가 절차 정비 등 새로운 장치를 도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이 제도가 국가 주도의 신속한 건설에만 치우칠 경우, 주민 숙의와 민주적 합의라는 본질적 절차가 형식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존재한다. 속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절차를 가볍게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2024년 6월 시행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을 실효성 있게 안착시켜 장거리 초고압 송전 수요 자체를 줄이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분산에너지가 모든 송전망 수요를 대체할 수는 없지만, 중앙집중형 전력망의 부담을 줄이고 지역별 에너지 책임성을 높이는 중요한 방향임은 분명하다.
제도 개선의 방향은 네 가지다. 첫째, 입지 선정 초기 단계부터 지중화, 우회 노선, 기존 사회간접자본 부지와의 연계, HVDC 등 기술적 대안의 비용과 편익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주민이 대등하게 논의할 수 있는 실질적 참여권을 보장해야 한다. 둘째, 공신력 있는 제3자 갈등조정 기구를 조기에 참여시키고, 지자체가 한전과 지역사회 사이에서 창의적 대안을 조율하는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모델을 체계화해야 한다. 셋째, 전력계통영향평가 제도를 실효성 있게 운용하고,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와 에너지 자립 기반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넷째, 보상의 개념을 일회성 지원금에서 벗어나 장기 지역기금 조성, 주민참여형 재생에너지 이익공유, 실질적인 생활환경 개선, 건강·환경 장기 모니터링을 결합한 상생의 제도로 발전시켜야 한다.
진정한 에너지 대전환은 발전원의 세대교체에 머무르지 않는다. 전기를 만들고 보내고 소비하는 전 과정에서 수반되는 혜택과 책임을 우리 사회가 얼마나 정의롭고 투명하게 분담하는지까지 포함해야 한다. 진정한 에너지 안보는 더 높은 전압과 더 긴 초고압 송전선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선로 아래 서 있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권리와 지역공동체의 신뢰를 지켜내는 전력망 민주주의에 터전을 둬야 한다.
출처 : 환경일보(https://www.h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