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평]
2022년 ‘환경의 날’, 환경정책의 망실(亡失)을 고함
1972년, 국제사회가 지구환경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자고 UN에서 제정한 날이 ‘환경의 날’이다. 인간 편리를 위해 희생당한 지구환경이 더는 인간을 수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위기감과 자성의 다짐이다. 그렇다면 5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다짐을 잘 이어가고 있는가.
악화일로의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위기
기후위기의 완고하고 가파른 기울기는 나아질 태세가 아니다. 재난 수준의 증거와 개별 종의 절멸에 기댄 징후까지 지구 곳곳에 널렸는데도 인류는 무한 성장이라는 망상과 지금까지 살아온 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100년까지 지구 평균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1.5˚C 이내로 묶어내야 3분의 2 확률로 파국을 막을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경고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획기적인 전환이 없다면 지구 평균기온 상승은 3˚C를 넘길 것이라고 예측된다. 우리는 당장 기후위기로 시작되는 파국의 시작에 서 있는지 모른다. 더불어 2000년부터 매년 우리나라 전체 산림 면적과 비슷한 약 650만㏊의 산림이 사라졌고, 지구 전체 생물 종 중 100종 이상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게 UN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의 설명이다. 지구 전체 동식물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다. 해당 보고서는 자칫 6천600만 년 전 공룡이 멸종한 뒤 처음으로 지구가 대멸종(mass extinction)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내용도 싣고 있다. 또 1970년에 비해 야생생물의 개체 수는 현재 33%만 남았으며 계속해서 감소하는 추세로 유전자 다양성도 현격히 떨어져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그야말로 악화일로다.
전환이 필요할 때 관성에 젖은 우리나라
뒤늦게라도 국제사회는 전환을 시작했고 준비하고 있다. 국내선 항공 증설과 신공항을 ‘지역균형발전’으로 포장하고 금과옥조로 규정해버린 우리나라와 달리 영국 항소법원은 히스로 공항의 제3 활주로 건설 계획을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파리협정에 따른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위반하고 있다는 이유다. 또 프랑스 하원은 기차로 2시간 3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거리는 항공기 운항을 금지한다는 기후법안을 통과시켰다. 과도한 비행기 운항으로 기후위기 상황을 악화시킬 수 없다는 단호함이다. 독일, 덴마크 등 EU뿐만 아니라 미국도 막대한 재정 투자로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현재의 산업구조가 인류의 지속가능성과 어떻게 조응하고 배치되는지 들여다보고 관성이 아닌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고 열광하면서도 정책의 지향은 근대적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특히 환경정책은 윤석열 정부 들어 그야말로 망실(亡失)의 지경에 이르렀다.
환경정책의 표리부동
「오늘날 자연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모든 생명이 함께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생물다양성이 우수한 자연은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훼손된 지역은 복원해야 한다. 야생동물과 사람의 접점을 줄여서 자연이 야생동물의 진정한 쉼터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인간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생명체의 소리 없는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한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지난 5월 19일 한국일보에 기고한 ‘모든 생명이 함께하는 미래를 위하여’ 중 일부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개발과 성장을 발전과 동일시하고, 자연을 인간 편리를 위한 수단과 도구로 취급해온 인간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자는 환경부 장관의 일갈은 명쾌하고 반갑다. 기후위기, 생물다양성 위기 등 발등에 떨어진 불 앞에서 성장주의를 재고해 인간 편리를 줄이고, 자연의 혹사를 멈춰야 한다는 환경정책의 지시등처럼 보인다. 하지만 말 잔치에 불과하다. 표리부동은 단박에 드러났다.
존재 이유를 잊은 환경부
환경부는 지난 5월 30일 '환경규제현장대응티에프(TF)'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TF의 목적은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규제 혁신 성과 창출이다. ‘경제단체 등과 핫라인을 구축하여 산업계 애로사항을 상시 경청하고, 발굴한 건의과제는 하향식(Top-down) 방식으로 신속하게 정비하는 등 규제개혁과제 발굴부터 정비까지 일괄(원스톱) 지원’하겠다는 설명도 붙였다. 이 정도면 환경부에서 환경정책이 아니라 산업정책을 세우는 셈이다. 환경부는 환경보호를 위해 규제와 조정을 본래 목적으로 삼는 부처다. 그런 부처가 기업들이 현장에서 원하는 수요자 중심의 규제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존재 의무를 저버린 것과 같다. 최근 일회용품 보증금제 시행을 연기한 것도 마찬가지 흐름이다. 다이옥신과 다수의 발암물질이 기준치 이상 검출된 반환 미군기지를 정화 없이 시민들에게 공원으로 개방하겠다는 국토교통부를 규제하지 않는 것도 환경부로서 제 기능을 잃은 것이다. ‘환경오염물질 및 환경오염원의 원천적인 감소를 통한 사전예방적 오염관리에 우선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라고 환경정책기본법에도 명시된 ‘사전예방의 원칙’이 사라진 환경부라면 2022년 현재 대한민국 환경부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정부조직법은 환경부 장관을 자연환경, 생활환경의 보전, 환경오염방지, 수자원의 보전ㆍ이용ㆍ개발 및 하천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이로 규정하고 있다. 환경부 장관은 기업 편의를 봐주는 자리가 아니다. 환경부 장관은 시민 건강권이 위협받는 것을 두고 보는 자리가 아니다. 환경부 장관은 자연환경과 생활환경을 보전하고 환경오염을 방지와 해결을 위해 규제하고 조정하는 자리다. 2022년 환경의 날, 환경정책의 망실을 목격하고 환경부 장관의 기본적인 역할을 짚어야 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2022년 6월 5일
한국환경회의
[논 평]
2022년 ‘환경의 날’, 환경정책의 망실(亡失)을 고함
1972년, 국제사회가 지구환경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자고 UN에서 제정한 날이 ‘환경의 날’이다. 인간 편리를 위해 희생당한 지구환경이 더는 인간을 수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위기감과 자성의 다짐이다. 그렇다면 5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다짐을 잘 이어가고 있는가.
악화일로의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위기
기후위기의 완고하고 가파른 기울기는 나아질 태세가 아니다. 재난 수준의 증거와 개별 종의 절멸에 기댄 징후까지 지구 곳곳에 널렸는데도 인류는 무한 성장이라는 망상과 지금까지 살아온 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100년까지 지구 평균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1.5˚C 이내로 묶어내야 3분의 2 확률로 파국을 막을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경고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획기적인 전환이 없다면 지구 평균기온 상승은 3˚C를 넘길 것이라고 예측된다. 우리는 당장 기후위기로 시작되는 파국의 시작에 서 있는지 모른다. 더불어 2000년부터 매년 우리나라 전체 산림 면적과 비슷한 약 650만㏊의 산림이 사라졌고, 지구 전체 생물 종 중 100종 이상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게 UN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의 설명이다. 지구 전체 동식물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다. 해당 보고서는 자칫 6천600만 년 전 공룡이 멸종한 뒤 처음으로 지구가 대멸종(mass extinction)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내용도 싣고 있다. 또 1970년에 비해 야생생물의 개체 수는 현재 33%만 남았으며 계속해서 감소하는 추세로 유전자 다양성도 현격히 떨어져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그야말로 악화일로다.
전환이 필요할 때 관성에 젖은 우리나라
뒤늦게라도 국제사회는 전환을 시작했고 준비하고 있다. 국내선 항공 증설과 신공항을 ‘지역균형발전’으로 포장하고 금과옥조로 규정해버린 우리나라와 달리 영국 항소법원은 히스로 공항의 제3 활주로 건설 계획을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파리협정에 따른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위반하고 있다는 이유다. 또 프랑스 하원은 기차로 2시간 3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거리는 항공기 운항을 금지한다는 기후법안을 통과시켰다. 과도한 비행기 운항으로 기후위기 상황을 악화시킬 수 없다는 단호함이다. 독일, 덴마크 등 EU뿐만 아니라 미국도 막대한 재정 투자로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현재의 산업구조가 인류의 지속가능성과 어떻게 조응하고 배치되는지 들여다보고 관성이 아닌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고 열광하면서도 정책의 지향은 근대적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특히 환경정책은 윤석열 정부 들어 그야말로 망실(亡失)의 지경에 이르렀다.
환경정책의 표리부동
「오늘날 자연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모든 생명이 함께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생물다양성이 우수한 자연은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훼손된 지역은 복원해야 한다. 야생동물과 사람의 접점을 줄여서 자연이 야생동물의 진정한 쉼터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인간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생명체의 소리 없는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한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지난 5월 19일 한국일보에 기고한 ‘모든 생명이 함께하는 미래를 위하여’ 중 일부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개발과 성장을 발전과 동일시하고, 자연을 인간 편리를 위한 수단과 도구로 취급해온 인간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자는 환경부 장관의 일갈은 명쾌하고 반갑다. 기후위기, 생물다양성 위기 등 발등에 떨어진 불 앞에서 성장주의를 재고해 인간 편리를 줄이고, 자연의 혹사를 멈춰야 한다는 환경정책의 지시등처럼 보인다. 하지만 말 잔치에 불과하다. 표리부동은 단박에 드러났다.
존재 이유를 잊은 환경부
환경부는 지난 5월 30일 '환경규제현장대응티에프(TF)'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TF의 목적은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규제 혁신 성과 창출이다. ‘경제단체 등과 핫라인을 구축하여 산업계 애로사항을 상시 경청하고, 발굴한 건의과제는 하향식(Top-down) 방식으로 신속하게 정비하는 등 규제개혁과제 발굴부터 정비까지 일괄(원스톱) 지원’하겠다는 설명도 붙였다. 이 정도면 환경부에서 환경정책이 아니라 산업정책을 세우는 셈이다. 환경부는 환경보호를 위해 규제와 조정을 본래 목적으로 삼는 부처다. 그런 부처가 기업들이 현장에서 원하는 수요자 중심의 규제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존재 의무를 저버린 것과 같다. 최근 일회용품 보증금제 시행을 연기한 것도 마찬가지 흐름이다. 다이옥신과 다수의 발암물질이 기준치 이상 검출된 반환 미군기지를 정화 없이 시민들에게 공원으로 개방하겠다는 국토교통부를 규제하지 않는 것도 환경부로서 제 기능을 잃은 것이다. ‘환경오염물질 및 환경오염원의 원천적인 감소를 통한 사전예방적 오염관리에 우선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라고 환경정책기본법에도 명시된 ‘사전예방의 원칙’이 사라진 환경부라면 2022년 현재 대한민국 환경부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정부조직법은 환경부 장관을 자연환경, 생활환경의 보전, 환경오염방지, 수자원의 보전ㆍ이용ㆍ개발 및 하천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이로 규정하고 있다. 환경부 장관은 기업 편의를 봐주는 자리가 아니다. 환경부 장관은 시민 건강권이 위협받는 것을 두고 보는 자리가 아니다. 환경부 장관은 자연환경과 생활환경을 보전하고 환경오염을 방지와 해결을 위해 규제하고 조정하는 자리다. 2022년 환경의 날, 환경정책의 망실을 목격하고 환경부 장관의 기본적인 역할을 짚어야 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2022년 6월 5일
한국환경회의